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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택의 종부

           종택의 종부  
                                        신혜순

죽림리 대수마을 권씨의 종부가 작년 돌아가셨다
그래도 마을 종택은 방문객을 받아 종가집을 구경했다
자그마한 종부사진
조금 큰 키인 우리도 올라가기 벅찬데
오르락내리락 돌계단에 오르내린 시간 윤기가 자르르하다
일 년 지난 부엌 가마솥에
윤이 반질반질하다
방금 종부가 장독대에 간 듯한 착각에
솥을 지금도 쓰나요 물으니
종부님이 부지런하셨습니다 하신다
동지 지난 칼바람 탓도 있지만 집 뒤 댓바람 소리가
종부의 살아 있는 소리처럼 차랑차랑하다
고된 삶이었을까 보람이었을까
아래 사랑채에는 방이 열 칸쯤
무슨 반찬들을 맛깔나게 올렸을지
시간을 익혀낸 그녀,
오는 내내 이제 편안하게 쉬고 계실 그곳에 안부를 묻는다
죽림리 내려오는 길옆 억새 바람 스치는 소리는
차마 종택을 떠나지 못한 종부의 풀 먹인 치맛자락 소리다
어둡고 힘든 터널을 들어가는 나의 길잡이인 듯
일상의 무한 반복이 또 다른 것에 도착하며
작은 것이 더 큰 것이라는 지혜를 배운다

<제3회 예천 내성천문예현상공모전 입선작>
(『김포문학』38호,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21 )

[작가소개]
신혜순, 김포문인협회 이사,《문학의 봄》등단, 내성천문예현상공모전 입선, <달詩〉 동인, 공저시집 『시차여행』 『꽃을 매장하다』 


[시향]
  신혜순 시인의 시 ‘종택의 종부’는 독자를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이 지었다는(선조 22년, 1598 임진왜란 전), 예천권씨 초간종파 종택으로 데려갑니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안채는 국가민속문화재 201호로, 사랑채인 초간종택 별당은 보물 4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랑채 외부는 소박하나 내부의 천장가구는 부재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몄다 합니다.
  사랑채 내부의 편액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은 퇴계 선생이 수제자인 권문해에게 써 준 글로,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새겨야 한다’ 는 경구로 퇴계의 도덕적 수양론의 근간을 이루는 경(敬)의 실체라고 합니다.
  시인은 지난해 세상을 떴다는 키가 자그마한 종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돌계단에 오르내린 시간의 윤기가 자르르합니다. 방금 종부가 장독대에 간 듯이 부엌 가마솥에 윤이 반질반질합니다. 종부는 부지런하였답니다.
  집 뒤 댓바람 소리가 종부의 살아있는 소리처럼 차랑차랑합니다. 고된 삶이었을까? 보람이었을까? 사랑채 방이 열 칸쯤, 무슨 반찬들을 맛깔나게 올렸을지, 무던한 시간을 익혀냈을 종부, 시인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정감 어린 그림을 떠올립니다.
  죽림리 내려오는 억새 바람 스치는 소리, 차마 떠나지 못한 종부의 치맛자락 소리처럼 들립니다. 
  오늘 시인 자신의 길잡이 인듯 일상의 무한 반복이 이루어 내는 사소한 듯 크나큼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미의 은밀한 독백이 작지만, 큰 말이 되는 일미(一味)입니다.

 글: 심상숙(시인) 
 

신혜순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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