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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속에 대한 추억 

                                  박속에 대한 추억 
                                                                                  박채순 

  1960년대 한국 농촌 마을에서는 흔히 초가지붕 위에서의 하얀 박을 볼 수 있었다.
  마을에 여름 어둠이 내리면 박 덩굴엔 달빛 같은 박꽃이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가을이 물러갈 때까지 보름달 같은 박덩이가 매달려 평화로운 우리 농촌을 상징했다. 이제는 농촌마을 초가집도 콘크리트 건물에 슬래브지붕과 기와집으로 바뀌어 옛 정취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지금까지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여기며 살아오고 있다. 그중 내가 자란 지방에서만 먹는다는 피굴*과 바가지를 만들 박이나 덜 익은 박의 속을 된장에 주물러 조리해 먹었던 박속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피굴과 박속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간직해왔다. 그러던 중 며칠 전 김포시 대명항구의 생선시장 뒤편에 농산물을 파는 곳에서 하얀 박 두 개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무엇에 쓰느냐고 물었더니, 박속을 먹는 용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박속을 먹어보고 싶었던 터라 두말없이 박 하나를 오천 원에 샀다. 나의 고향 누나들이 계시는 곳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려 박속 요리법을 물어보고 직접 요리를 해 보았다. 
  덜 익은 박을 네 쪽으로 잘라서 물에 푹 삶은 후 하얀 박속을 긁어서 된장과 참깨 등 약간의 조미료를 첨가하여 박속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어머니께서 해주신 박속의 맛이 전혀 아니었다. 가난한 시절에 먹었고, 그 맛의 향수로 몇 년을 보낸 후 스스로 조리한 박속나물은 그때 어머니께서 마련해 주셨던 그 맛이 되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 조리법과 양념 재료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입에 맞는 맛이 지천인 세상에 배고프고 먹을 것 없었을 때의 그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해주신 박속은 가난한 시절에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려는 어머니의 간절함과 사랑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세상을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대하거나, 아름다운 곳을 구경할 때는 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박속나물을 대하고 보니 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여섯 자식을 위해 사랑을 해주셨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그립다. 어머니께서 원하신다면 박속은 물론 귀한 음식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 간절함이 불현듯 밀려  온다.
(『김포문학』40호 300쪽,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23)               

[작가소개]
박채순 시인, 정치학 박사, 월간《한맥문학》으로 수필 등단, 김포시 문인협회 회원, 김포〱시쓰는사람들〉동인, 아르헨티나 한인 문인협회 동인지《로스 안데스》편집장 역임. 


[시향]

  정치학 박사 박채순 시인은 현재 김포시 양곡에서 요양사교육원을 개설, 창업하였다고 한다. 사회적 시스템을 후원하며 늘  선 자리에서 남들에게 친절한 도움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또한 《인디 포커스》에 박채순의 북리뷰(book review)가 22회째 연재되고 있다.
  본문과 같이 우리는 어려서 먹어 본 특정한 음식의 맛을 평생 찾아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음의 고향 같은 그 맛을 문득 혀끝에 떠올릴 때 우리는 속절없는 향수병을 앓는 것이다.
  그믐밤에도 초가지붕에 하얗게 피는 박꽃, 박을 켜서 박오가리를 말려 두었다가 초밥에 넣으면 꼬득하게 씹혔다. 
  그 손길, 그 장소,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 가슴속 그림 자국으로 갈수록 새뜻해지는 총천연색 필름이 되는 것이다. 그 아련한 색칠은 사라져가는 우리에게 늘 생기롭게 북돋워 주는 마법이 된다. 허물지 않는 마음의 산실이 있기에 언제라도 우리는 새롭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이 끝나지 않는 향수(鄕愁)는 때때로 우리 마음에 향수(香水)를 뿌려주고 간다.
글: 심상숙(시인) 
 

박채순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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