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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옥수수 수염"이 살갗에 닿았던 기억
유인봉 대표이사

텃밭에서 붉은 옥수수 수염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고향의 여름을 추억한다. 한 여름날 멍석을 깔아놓은 마당가, 찐 옥수수맛의 향기와 모기를 쫓는 쑥을 태우던 그 쑥향이 지금도 코 끝에 닿을 듯 하다. 멍석에 누워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서 바라보는 여름 밤의 저녁 별빛은 유난히 높고 반짝였다고 기억한다.

한 여름밤의 추억은 하늘과 땅 자연에 대한 경계없는 기억을 빼고는 말할 것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함께 오늘도 살갑게 가슴안에 살고 계시다고 느낀다. 슬픔도 없고 함께 계신다는 믿음 안에서 또 다른 힘을 얻는다.

사람은 자신이 익힌 경험과 기억의 저장고에서 때로는 고단한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힘을 얻기도 하는 존재이다. 오롯이 익숙하게 경험한 것, 오래 발효된 된장의 깊숙한 맛처럼 어떤 경험의 이미지부터 다시 힘을 얻는다.

7월 초하루의 텃밭,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붉은 옥수수 수염의 보드랍던 감촉의 기억으로부터 낭만 한 줄기와 웃음 한 스푼을 담아올린다.

자연도 쉬지 않고, 텃밭도 쉬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사람도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고 싱싱하다. 

7월 한 달, 아마도 풀들이 자라며 풀속의 벌레소리, 풀피리 소리가 마구 들릴 듯 하다. 다른 때와 달리 7월 8월에는 풀들이 자라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풀이 자라는 속도를 못 쫓아가겠다싶을 때 9월에는 그 무성하게 마구 자라던 풀들이 누워버린다. 시와 때는 참 신기할 뿐이다. 한해 한해, 순간 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6월이 지나 7월에는 더 좋아지리라고 또 희망하며 초하루를 보내고 있다.

온갖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고난의 신음소리들이 크지만 오직 좋은 생각, 좋은 마음으로 7월을 바라고 기대한다.

단지 옥수수 몇 개, 무쇠 솥에 담아 맛나게 쪄 보리라. 온갖 희망이 흔들릴때마다 언제나 첫 밥상의 기대처럼 무수히 작은 희망의 상징들이 필요하다.

오직 마음은 소망할 수 있다. 

스스로, 스스로를 위한 이야기와 축제가 필요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저 세상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이 세상으로 태어난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지난 달 같이 계시던  한 분의 자리가 비었음을 아쉬워했다. 그의 평상의 모습, 해박하고 오래도록 건강하던 분이 그렇게 먼 길을 떠나시는 것은 순간이었다.  

모임의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할 때가 엊그제 같다며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아침 8시 반에 만나자던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차 한잔을 마주하고 나누는 너와 나의 순간 순간의 만남이 그토록 아름답고 정다운 풍경이고, 품격이라는 것을 서로가 또 느끼고 배운다.  

그저 만나면 좋은 친구, 누구를 미워할 까닭이 생기더라도 만나면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에 더 좋은 느낌을 얹어가며 살면 좋겠다.

나만 정석이고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넓고 크고 아직도 가보지 못한 마음과 경험이 너무 광대하다. 서로 마음을 챙겨가며 고운 모습을 알아주고, 그림처럼 살다가고, 마침내 남은 이들이 곱디 곱게 추억하게 할 일이다. 사람은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 남아있는 이들의 기억에서는 온전히 다시 살아있기에 우리는 영원성의 존재가 아닐까!

 그 분 덕분에 많은 이들이 만나고 반가워하고 소식을 나누며 환해지는 마음들을 남겨 볼 수 있는 것이 영원이다. 장례예식장이 그토록 밝을 수도 있고, 음식맛도 너무들 좋아하며, 떡을 나누는 모습과 정겨움을 유산으로 남길 일이다. 그토록 공들여 가며 살아내시고 유난히 마음이 좋으셨다는 그 분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남은이들이 한 발 한 발 걸어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을 이어준다면 얼마나 고마우랴!

어릴 적 동무들이 반백이 된 모습으로 변한 것에 서로 놀라워하고 손을 마주 잡고 마음속 이야기들을 쏟아놓으며 명랑해질 수 있는 곳이 어디이면 어떠한가!

7월의 초입에서 다시 우리를 살려내는 것은 지금 두손에 움켜 쥔 그 무엇보다 우리를 인도해서 여기까지 오게 한 많은 삶의 기억들과 굽이굽이 돌고 돌아온 추억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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