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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형

                종신형          

                                           하영이


태어나면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수갑을 차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벌써 60년째 살고 있습니다
감옥이라고 해서 메일매일이 답답하거나 힘든 건 아닙니다
즐겁고 행복한 날이 많지만 밋밋하거나 슬픈 날도 가끔은 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 가장 슬픕니다.
어머니의 종신형이 나보다 먼저 풀릴 거 같아서입니다

겨울에는 햇빛이 집안 깊숙이 들어오고
여름에는 베란다에 반쯤 걸쳐있는 남향을 좋아합니다
반짝반짝 싱크대는 빛이 나야 하고
욕실은 뽀송뽀송 습기를 말려야 하는 기준을 정해 둔 지 오래 되었습니다
엄지손가락 지문이 흐려지더니 내 폰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햇살 좋은 날 다육이는 제 식구 늘려가기에 바쁜 오후를 보내고 
이불 말리는 일은 건조기가 대신해 줍니다
신문물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나는 모범수입니다

나의 죄명은 사람입니다

( 김포문학 39호 281쪽, 사색의 정원, 2022 )

[작가소개]
하영이 《문학공간》시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현대작가회회원, 김포문화원이사, 김포문인협회고문, 김포문예대학학장역임, 김포문학상대상, 김포시문화상문화예술부문, 김포문학상작품집상 수상, 시집『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 『둥근 오후』 (가천문화재단창작지원금 수혜), 공저 『한강의 여명』 『겨울에 피는 해바라기』 외, 다수 있음 

[시향]
  한뼘 넘게 쑤욱 자란 초록의 보리가/ 창가에 앉은 아이의 얼굴을 한층 정겹게 한다/ 올겨울/ 추위를 먹고 견딜 저 보리는/ 새봄엔/ 더욱 힘찬 이삭을 피워 올리겠지(..)//
접시에 올라앉아 물만 먹고 자란/ 반동강이 무도/ 작디작은 보라색 향기로운 꽃을/ 다발 째 소복이 피워 올린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꿈을 먹고 산다/ 큰 나무로 자라 깊고 넓은 그늘 만들어/ 쉼터 되고 버팀목 되어질 꿈을 먹고 산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산다/ 큰 그릇으로 빚어져/ 이웃의 허물도/축복도 함께 나눌/ 사랑을 먹고 산다//
우리는 소망을 먹고 산다/ 오늘 하루에 충실하고/ 보람으로 즐거운/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하고픈/ 소망을 먹고 산다// 
(심상숙 詩,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전문, 계간 『서울교육』紙, 1998년 봄호 게재) 
  계간 『서울교육』紙 전권에 한 페이지, 詩 한편 실리는 난이 있었는데 필자의 시가 남산 서울과학교육원으로 송달 게재되고 소정의 원고료를 받은 날이 있다. 하영이 시인의 ‘종신형’이라는 본문을 읽으면서 잊었던 시 한 편을 꺼내어 본다. 
  동물로 태어나 속절없이 겪어내는 매일의 사람살이, 아침마다 오늘이 있어 감사하다. 언제나 있을 오늘이 아니기에 이 시간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사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가정 내 이웃이 이 고장이 이 나라가, 내가 사는 전 세계가 우주 전체가 늘 기쁜 소식으로 오가면 좋겠다. 내가 그들과 나눌 게 있다면 더욱 좋겠다.
  폭우가 내리던 지난주 토요일, 김포아트홀 김성녀의 뮤지컬 모노 <벽 속의 요정>을 관람했다. 관객은 박수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아있다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라며, 김성녀의 열연으로 이어지는 간절한 목소리에 마음을 다 내주는 시간이었다. 
  별일이 없는 날이라면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고, 시커멓게 그을린 입가를 서로 쳐다보며(혼자 거울도 좋겠다) 시시하게라도 웃어 볼 일이다.
글: 심상숙(시인) 

하영이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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