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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달팽이
유인봉 대표이사

들판이 푸르러간다. 어릴 적 시골의 들판을 걷는 엄마는 머리에 일꾼들이 먹을 들밥을 무겁게 이고 걸으셨다.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엄마 뒤를 따라 걷던  들판은 늘 기억속에 선명하게 살아있다.

5월의 푸른 들판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도랑물이 굽이굽이 흐르며 논과 논에 물을 대어주고, 한 논 한 논마다 모가 심어지고 생명의 푸르름으로 채워져갔다.

한참 세월을 돌고 돌아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다시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 있어도 기억속의 소녀로 엄마 뒤를 따라 걷던 내 모습은 그대로 자라지 않았다. 엄마 걸음을 따라가며 듣던 이야기소리가 남아돈다. 마치 방금 들은 듯이, 듣고 있는 것처럼 촉촉하다.

엄마가 자근자근 들려주신 달팽이 이야기 한 조각. 

“달팽이는 자식을 낳으면 모두 자기 살 속을 다 파먹여 살려놓고 빈 껍데기만 남아 물에 동동 떠내려간단다”

“그러면 달팽이 아이들은 "우리 엄마 떠내려가네! 우리 엄마 동동 떠내려가네"하고 노래를 한단다”

그 때 엄마의 이야기는 어린 마음에도 형언하기 어려운 아련하고 슬픔이 느껴졌던 것 같다. 아이 달팽이들이 엄마의 껍데기가 떠내려간다고 무심히 노래한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남아 돌아 자식으로 살때나, 이제 강산이 변해 부모라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중에도 때때로 떠오른다.

무수한 생명들에게는 작거나 크거나 깊은 이야기와 희생과 아름다운 슬픔이 있는 걸까! 잉태했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엄청난 희생으로 생명들은 대를 이어가며 생존한다.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난히 엄마를 따랐던 탓에 어디 친척집에 가도 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 배갯머리를 붙잡고 울었고 별로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었다.

어린 시절, 행여 엄마가 어디로 갈 때 치마폭을 놓칠세라 어린마음에 불안증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빈 달팽이로 떠내려 가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도(?) 했던 것 같다.

그토록 부모자식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대로 보여주는 달팽이 이야기를 넘는 또다른 상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가족을 위해어머니도 그렇게 6남매의 어머니로 사시다가 다 주고 가셨듯이, 수없는 이 땅의 부모들은 오늘도 다 주고자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5월의 신록은 참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간다.

내가 우리 어머니 고생하시는 것에 그토록 마음 쓰였듯이, 아이들도 조그만 텃밭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도 고생하지 말라고 하고, 요리 조리 꽤 많은 화분도 이제는 그만 가꾸라한다. 강아지를 키우다 버거워서 이제는 병아리를 키우는 데 그것도 늘리지도 말고, 힘들면 그만 두라고 한다.

어머니도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늘 일 속에 있으셨듯이, 솔직히 이제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힘들다. 움직이고 또 움직이려 한다.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몇 개의 그릇을 닦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진정으로 일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가 가셨던 길, 지난 일상들을 되살려 생각해보며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가까이 부모가 보인다.

가정의 달, 푸르러가는 5월에는 더더욱 그립고 간절하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이 함께 하는 일상과 한 끼의 밥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번 5월 연휴에는 네 식구가 내내 이야기를 나누며 옛날찐빵의 맛과 커피를 마시고, 사흘내내 내리는 빗속을 마다 않고, 이리 저리 달려가며 마음과 시간을 함께 했다.

시간을 다투지 않으며 오로지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일체감과 비가 내리는 서해바다의 흙탕물 섞인 무섭도록 힘찬 파도조차 시름을 다 씻어주는 듯 고마웠다.

비내리는 오월의 쉼없는 빗방울을 가득 담은 수평선과 들판을 가르며 달릴때는 홍해 바다를 가르고 달리는 듯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이끌어주는 시간 속으로 고분고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과 나, 이 세상에 와서 만난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달팽이처럼 언젠가 물길에 동동 떠내려가는 빈 껍데기처럼 갈지라도 아낌없이 사랑으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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