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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따러 간다    

        꽃 따러 간다                                                                         

                               문영하 

몽골초원의 여자들은 
뒷간에 갈 때 ‘꽃 따러 간다’고 한다
천상의 화원에다 볼일을 보고
풀꽃으로 뒤처리를 하는가 보다

뒷간을 차고 다니는 우리 아기는
이틀에 한 번씩 
거룩한 큰 꽃을 딴다

어미는 조향사의 표정으로
흠흠, 향과 색이 좋다며
물외꽃 같은 그 꽃을 
맨손으로 기꺼이 받아낸다

초원의 여자들은 천지사방 깔려있는
들꽃 위에다 꽃을 낳으니
꺾어도 꺾어도 살아나는 
꽃의 부활이다

대지를 향해 온 힘을 모아 오롯이 피우는 꽃
지모신이 보냈을까
솜다리, 절굿대, 분홍 술패랭이가 와서
그 순한 꽃을 가만히 받아낸다

(문영하 시집, 『소리의 눈』 28쪽, 미네르바, 2023)

[작가소개]
문영하 경남남해출생. 한국시인협회회원, 2015년 『월간문학』 등단.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시집 『소리의 눈』 2023년 문학나눔도서 선정. 시집『청동 거울』 『오래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향]
  문영하 시인의 시는 잘 읽히는 듯 수월하게 접근하지만 후미가 있다. 후미진 곳은 조금 두려우나 많이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건너뛰는 미덕이 있는가 하면 대자연 속 연못 하나씩을 파 두고 가로 막기도 한다. 다정다감한 밀어들이 손짓하지만 똬리를 튼 뱀이 도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어에 물리지 않으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살이가 갖는 아름다운 지경으로의 안내라는 걸 알게 된다. 
  태고에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여성은 매우 신비로운 존재였으며, 대지를 어머니로 보는 고대 신앙 지모신(地母神)은 하늘에 대한 천부 신앙보다도 기원이 오래되었다고 한다. 
  뒷간을 차고 다니며 이틀에 한 번씩 꽃을 따는 시인의 가정에 어린 아기처럼, 천지사방 깔려있는 들꽃 위에다 꽃을 낳는 몽골 초원의 여자들 솜다리, 절굿대, 분홍 술패랭이가 와서 그 순한 꽃을 가만히 받아낸다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노래가 우리를 무한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솜다리, 절굿대, 분홍 술패랭이로 돌아가 그 순한 꽃을 맨손으로 받아내는 대지가 되어 보는 것이다.
글: 심상숙(시인) 

문영하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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