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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식탁    

        사과와 식탁                                                                            
                               서상민

새가 식탁 위에 앉아있다 
다문 부리에서 파란(波瀾)이 흐르는 
쭈글쭈글해지고 거뭇한 새가 
있었다는 색을 지우면 
공중이 된다 

식탁 위에 사과가 놓여있다
어두운 뿌리를 격발시켜 하늘이 되는 나무와 숲 
바람을 피력(披瀝)하는 새가 날아와 
사과를 쪼아 먹는다 
목질의 무늬가 굽이쳐 솟는 
반질반질한 표면 위로 
수만 세기의 별들이 돋아 사라지는 식탁 
사막의 모래는 바다로 변하고 
식탁 위에서 사과가 날개를 편다

사과 위에 식탁이 놓여있다 
식탁이 사과를 으깨지 않는 것은 
깊은 수심 때문 
어디선가 망각의 부리를 열어
새가 날아오기 때문

식탁이 사과의 문을 연다
사과가 새를 몸 안으로 품는다
사과 속 씨방에 까만 부리들이 싹트고
식탁이 사과나무로 자란다 
새가 주렁주렁 달린다
(《어린이와 문학》2022, 봄호)

 [작가소개]
(서상민,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예대학 강사역임, 《문예바다》 신인상 등단, 김포문학상, 치악산 생명문학상 수상, 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     

[시향]
 서상민 시인의「사과와 식탁」시는 4연으로 구성되어 사과와 식탁, 새가 등장한다. 
 식탁 위에 앉은 “다문 부리에서 파란(波瀾)이 흐르는 쭈굴쭈굴해지고 거뭇한 새가 있었다.”는 그 색을 지우면 여니 공중이 되어 버린다.
  식탁 위에 사과가 놓여 있다. 어두운 뿌리를 격발시켜 나무와 숲은 하늘이 된다. 바람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는 새가 날아와 사과를 쪼아 먹는다. 목질의 무늬가 굽이쳐 솟는 식탁의 반질반질한 표면 위로 수만 세기의 별들이 돋았다가 사라지는 동안, 사막의 모래는 바다로 변한다. 그 사이 식탁 위에서는 사과가 날개를 편다.
  사과 위에 식탁이 놓여 있다. 식탁이 사과를 으깨지 않는 것 은 깊은 수심 때문이다. 
  “어디선가 망각의 부리를 열어 새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망각이란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운 발명품인가? 
다문 부리에서 파란이 흐르는 쭈굴쭈굴해지고 거뭇한 새의 부리를 잊는다는 일, 식탁의 목질 무늬가 굽이쳐 솟는 반질반질한 표면 위로 수만 세기의 별들이 돋았다가 사라지는 동안, 사막의 모래가 바다로 변하는 그 사이, 망각의 부리를 가진 새가 날아오는 세계, 어렵고 힘든 날만 회억한다면 오늘이 불가능할 일이다.
  식탁이 사과의 문을 열어 사과가 새를 몸 안으로 품는다. 사과 속 씨방에 까만 부리들이 싹이 트고 식탁이 사과나무로 자란다. 새가 주렁주렁 달린다. 식탁의 포용으로 식탁과 사과, 새는 넉넉히 삼위일체가 된다. 
  망각의 새의 부리를 품은 “식탁 위의 사과”는 오늘도 새가 되어 날개를 편다. 우리는 어제의 파란이 흐르던 부리를 잊고, 오늘 새롭게 행복하기에 감사하다. 망각의 부리를 가진 새, 명품회사 특허품, 세상의 지혜로 훨훨 나아가게 하는 사랑이고 희망이다.
글: 심상숙(시인) 
 

서상민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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