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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인


꽃들이 폭설로 피었기에 내 수줍은 시도 안개처럼 왔다

  호명하지 않아도 발레 슈즈를 신은 듯 착착 제자리로 찾 아드는 꽃들 사월의 현상들이 나를 혼미하게 했다 그때 나는 덜 익은 레몬이었다 노란 껍질과 속살의 미숙한 신맛 그럼에도 나의 문장들은 그의 팔뚝에 소름이 되고 싶었다 그의 입술에서 떨리고 싶었다 번개를 치듯 나를 퍼 간 꽃들이 꿈속까지 파고들었다 어깨를 부딪은 적도 없는데 비틀거렸다

  기억의 거품들이 승화되어 갔다
  서고의 많은 책들 중에 꽂히고 싶었다
  덜 익은 레몬을 깨물듯 그를 끌어안았다
  간절한 스무 행을 위하여 해지는 줄 몰랐다
  영혼의 시즙屍汁인 그대여
  나는 나의 무례를 용서 빌지 않을 것이며
  시마詩魔에 시비도 걸어 볼 참이다
  돌부리에 넘어져 피를 보게 되더라도
  그대가 걸어놓은 마법이 풀릴 때까지
  돌부리를 다듬어 오목한 숟가락이 될 때까지
  탈수된 말(言)들을 치대어 리듬을 탈 때까지

  좀체 혀끝을 내밀지 않는 그대를 향해
  하악하악 하악질도 해보는 것이다

(박정인 시집,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 96쪽, 천년의 시작, 2022)
 
[작가소개]
(박정인 경북 청도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김포문인협회 감사, 김포문예대학 강사, 『시와 산문』 신인상, 제17회 김포문학상 대상 수상 (전국공모), 김포문화재단 지원금 수혜 (2022), 《김포미래신문》‘시향’ 게재 (2021,가을~2023,여름), 시집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 외, 동인지 공저 다수

[시향]
꽃피는 사월이다. 느릅나무 잎이 피고 골짜기 실개천에도 꽃이 피는 계절이다.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김소월 시 「산유화」부분) 어디선가 노랫소리 들린다. 
시인은 그때 꽃 속으로 혼미했다. 번개를 치듯 시인을 훔쳐 간 꽃들, 꿈속 깊이 파고 들었다. 시인은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시인은 자신의 문장이 그의 팔뚝에서 소름이 되고, 그의 입술을 떨게 하고 싶었다. 
덜 익은 레몬을 깨물 듯 그를 끌어안고 간절한 열일곱 행을 위하여 몸을 맡겼다.
시마詩魔는 끔찍했다. 걸려든 마법에서 풀리도록 오목 숟가락이 될 때까지 돌부리를 다듬어야 했다. 말들이 리듬을 탈 때까지 치대어야 했다.
  “좀체 혀끝을 내밀지 않는 그대를 향해
   하악하악 하악질도 해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들이 심연의 바닥을 치고 뛰어오르는 오늘이다.
   “꽃들이 폭설로 피었기에 내 수줍은 시도 안개처럼 왔다”
그리하여 박정인 시인의 시는 그지없이 아름답다. 내밀하고 결 고운 시선이 시의 그릇에 수를 놓고 독자의 마음에 흠씬 자리를 내어주게 한다.
글: 심상숙(시인)

 박정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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