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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내게 오는 순정한 그리움에게수필/가을의 문턱에서

   

   
▲ 최철호
전 경기도학원연합회장
계절이 바뀌어 갈 때마다 옷깃이 들뜨고 그 사이에서 솟는 바람이 매번 나의 호흡을 가끔씩 멈추게 하고 짧게 짧게 뒤돌아보게 하지만, 가을은 유독 돌아다보는 시선의 끝에 항상 물기가 어립니다.

매일 매일이 아파트의 동마다, 층마다 매달린 번호처럼 똑같은 숫자에 크기만 다른 긴장감으로 감정을 자극하고 늘 모자란 것은 시간뿐인 세월이지만 문득 문득 내 아픔을 가지고 그대에게로 떠나 푸념을 늘어놓고 돌아오고 싶어집니다.

연한 우윳빛 살들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지고 상처받으며 이제 그 흔적들로 아름다움에 대한 회상만이 가끔씩 가려움증으로 떠오르고 나는 이제 전처럼 그렇게 자주 붉어지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귓볼이 붉어지도록 긴장된 설레임이나 기다림을 갖질 못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을 마음 편히 갖질 못하고, 누군가가 단지 내 모습이 그리워 내 체취가 그리워 단지 그것만을 위해 찾아오는 일도 내가 그 누군가의 모습이 그리워 그가 보고 싶어 찾아가는 일도 없고, 11월 이맘때 늙은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홍시감 몇 개를 보면 잔가지 위의 하늘이 더 맑고 높아만 보였는데, 이제는 춥고 쓸쓸함만이 더할 뿐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그리워해야 다시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까? 그리워하는 그 잔망스런 감정(?)이 내게도 있는지, 그것을 내가 원한다면 무엇 때문일까?

아무튼 전 그리워하고 싶습니다. 뭔가를 그리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무서리내린 아침 일찍 살얼음이 언 개울, 징검다리를 건널 때 맑은 얼음 아래로 떠오르던 피래미들이 그립고, 추운 겨울 밤 눈이 쌓인 들길을 나뭇짐을 진 어머님을 따라 저는 고주배기(뿌리달린 나무둥치) 하나를 끌고 십 여리를 걸어오던 그 절실하던 가난과 감추어야  했던 어머님의 눈물이 그립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할아버지가 될 나이에야 어머님이 다시 그립고, 들녘의 바람이 가을 들어서야 한 박자씩 느리게 들풀들의 입술을 태우는 것을 깨닫는게 낯설기도 하고 그간 무심한 세월이 이제야 가슴에 닿아오는 느낌입니다.

단풍든 산허리를 돌아 내려오던 그 가을 저녁바람, 산그늘과 함께 마을로 오시던 그 어머님의 어깨위의 고단함과 애잔함이 그립습니다.

지금 보다 더 어릴 때는 첫사랑과 그 추억들, 명예와 돈을 가질 수 있던 순간들이 언제나 그리웠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게 인내와 삶의 깊이를 주었던, 내가 그동안 기억해내지 못한 어머님이 내게 주었던 사랑과 그 춥고 고독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것을 내안에 품고 있으면서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리워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지는군요. 그러고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순정한 그리움이 더  솟아  오를지도 모르겠군요. 이렇게 애틋함이 솟아오르면 지금의  삶이  참으로 소중한 것으로부터 온 긴 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순정한 것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현재의 삶도 순정하게 하려는 바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가을에는 가끔씩은 일삼아 창을 열고 순정한 것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최철호  opulent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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