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은 날
최종월
초대 받은 날인 걸 잠시 잊거나 자주 잊었다
풀밭에 앉아 쑥을 뜯는다
연한 쑥 줄기를 싹둑 자르는 모순
하늘 보며 편안하게 숨 쉬는 자유
살구나무에 꽃등이 매달리고
목련꽃이 별이 되어 내려오고
조팝나무 두 팔 벌려 함박 웃는다
이 땅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살아가는 건 걸어가는 거다
햇살을 꼭 안아주는 거다
끊어진 통화
그 다음을 기쁘게 적어 보는 거다
지구의 봄날에 초대 받은 지금
경사진 풀밭에 주저앉아
엉덩이로 우주의 별 하나를 밀고 있다
만난 적 없는 행성의 먼 그대에게
초대장을 띄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 ⌜여기⌟에서 인용
(최종월 시집, 『나무는 발바닥을 보이지 않는다』지혜사랑 시인선 254, 2022)
[작가소개]
최종월 강원도 태백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김포문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 편찬위원. 김포문학상 대상. 경기예술인상.『계간문예』작가상. 청록문학상 수상. 시집 『반쪽만 닮은 나무 읽기』, 『사막의 물은 숨어서 흐른다』, 『좽이 던지는 당신에게』, 『나무는 발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시향]
최종월 시인의 삶에 대한 시선이 유리를 투과한 빛처럼 느껴진다 오랜 지난날을 통과한 오늘의 삶이 긍정과 만족으로 흥건하다 경사진 풀밭에 앉아 연한 쑥 줄기를 싹둑 자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생경해지고 지구에 초대받은 자로서의 태도에 모순을 느낀다 무심히 하늘을 볼 수 있고, 편안하게 숨 쉬는 자유를 누리고, 살구나무에 매달리는 꽃등과 별처럼 떨어지는 목련 꽃잎들과 조팝꽃이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찬란한 봄의 풍경을 보며 마음 한가득 감사를 담는다
“이 땅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구처럼 시인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동시에 원대한 꿈의 실현을 위해 욕심내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다
“살아가는 건 걸어가는 거다/ 햇살을 꼭 안아주는 거다/ 끊어진 통화/ 그 다음을 기쁘게 적어 보는 거다”라며 자신의 삶을 초연하게 관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돌아보는 삶이 이렇듯 고요하고 순하다니,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시인의 삶에서는 온화한 여백이 느껴질 따름이다
봄날 쑥을 뜯던 시인은 문득, 지구가 자신을 초대해 주었으며 심지어 엉덩이로 우주의 별 하나를 밀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의 이 초연한 감사는 어디로부터 번져 온 기쁨일까? 그예, 시인도 먼 먼 어느 행성의 그대에게 초대장을 띄워 보내고 싶어진다
글 : 박정인(시인)
최종월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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