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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을 품은 마음(수필)

                              짝을 품은 마음(수필)

                                                                  목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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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한참 동안 답이 없거나 나는 아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말을 하기도 하더니, 어렵사리 찾은 단짝과 찍은 사진에 ‘멜랑꼴리한 오늘. 님들, 담즙이 왜 나오는지 앎? 천재들은 연애 중.’이라는 글을 턱 하니 올렸다. 나와 S의 이야기였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20대의 파릇파릇하던 시절, 우리는 심오한 철학자처럼 예술가와 그들의 사상에 대해 고민하고 논하기를 즐겨했다. 시끌벅적한 동대문종합운동장의 노점상들 사이를 지나며 뒤러의 작품 ‘멜랑꼴리아’ 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을 빌려 작품을 훑다가 내가 말했다.

 “천재는 쓸개에서 담즙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우울해지는 이유래. 담즙과 우울이 훈장이 되었겠지. 그러니까 천재인 우리도 뒤러 작품속 천사처럼 당당하게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잡아도 된다 이 말씀야.”

 꼬맹이는 S의 비공개 게시물에 적힌 우리 어린 날의 추억을 과시용으로 헤집어놓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이의 학교에 전화를 해버렸다.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과 슬픔까지 이끌어 내는 것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꼬맹이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과 함께, S의 계정을 원상복구가 아니라 삭제 버튼을 누르며 퇴장했다. 하지 않던 요란한 일을 벌여가며 떠난 친구의 공간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이 허무한 결과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담즙과 담낭에 문제가 있던 천재를 기리고 지켜주려다 꼬맹이한테 당했다는 이야기를 S가 들었다면 아마도 지붕이 떠나갈 듯이 웃었을 것이다.

 멜랑꼴리아를 들먹이며 분위기 잡던 우리는 삶의 어두운 터널을 겨우 겨우 기어서 지나온 전우였다. 터널에서 살아남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점차 고통을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직 더 경험하고 누려야 할 기쁨과 고통이 많은 만큼, 더 이야기하고 풀어낼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설렘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에 근육이 붙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단짝은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아 꼬맹이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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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문학 39호, 318~319 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김포문인협회 회원.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 박사 수료.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20). 세명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대상(2022)수상.

[시향]

 위 글은 한 초딩 꼬맹이로부터 도용당한, 작가와 작가의 죽은 친구인 S와의 추억 부분이다 S의 페이스북은 이름까지 바뀌었기 때문에 자칫 작가도 모르는 페이스북 친구가 있었나 할 정도였다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온갖 노력 끝에 페이스북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자 죽은 친구의 계정이 열렸다 시인이었던 S의 분위기가 이 꼬맹이를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해 주기도 했고, 꼬맹이에게는 S의 수많은 페이스북 친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가는 꼬맹이에게 메신저를 통해 다른 사람의 계정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임을 경고했고, 이 일은 범죄이기 때문에 원주인의 친구들이 법적 해결책을 모색 중이라고 소심한 협박도 해보았으며 죽은 S의 소중한 흔적들을 망가뜨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꼬맹이는 몰랐다는 말과 함께 계정을 원상복구가 아니라 삭제 버튼을 누르며 퇴장했다.” 페이스북 계정을 도용당한 S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동대문종합시장 노점상들 사이를 지나며 친구와 나누었던 많은 철학적 대화 부분을 읽다 보면 S를 품고 사는 작가의 추억들이 도용당했을 때의 허탈함이 내 일처럼 고스란히 느껴져 온다

글 : 박정인(시인)

 

목명균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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