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소나기가 길어진 열두살의 여름날이었다.

탄광에 일하러 가신 아버지가 막장에서 나올 무렵이라 장대우산을 챙겨 들고 우산을 쓰고 산길을 달렸다.

신유균 헤어시크SYK아카데미 원장

태백산맥 줄기 산등선 아래 있던 집에서 아버지 막장까지 약 10리길. 슬러퍼를 신은 발이 미끄러워 벗어들고 맨발로 달렸다. 그 높은 산길이 무섭지도 않았다. 석탄이 쌓인 언덕을 비스듬한 발걸음으로 디디며, 까만 물이 흐르는 길을 달리니 등 뒤의 옷에 까만 얼룩이 쌓였다. 그 무렵에 저 멀리서 눈이 하얀, 작은 어깨의 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 우산을 들으시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버지는 "왜왔냐?" 하시곤 앞서 걸어가셨다.

내가 아버지를 드리려고 들고 갔던 장대우산은 내 뒤에서 끌려왔고, 아버지는 말없이 앞 만보고 걸어가셨다.

집에 다다를 때 쯤에 비가 그쳤다.

아버지는 당신의 우산을 접고, 그제서야 뒤돌아 보시고는 그대로 접힌 장대우산을 받아들고 가셨다.

나의 느려진 발, 석탄의 진흙이 발가락 사이에서 햇빛을 튕겨냈다. 

석탄의 빛은 그 결처럼 아련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그토록 막장의 고단한 삶으로 내 작은 가슴을 보듬어 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을까?

신유균 헤어시크SYK아카데미 원장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