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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서 살림을 다 태우고, 엄니는 젖 떨어지기 전인 나를 울진 외가댁에 맡기고 가족들은 사북으로 이사를 갔다.
봄이면 찔레꽃 피기 전 찔레 순 껍질을 까서 먹었다. 주전부리가 없어 찔레순이 사탕을 대신할 때가 많았던 외가댁 살림살이었다.
일 년에 한 두어 번 만나던 게 전부인 가족들 그리고 어머니.
7~8살 무렵, 어느 날 문득 외가댁에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가 두 밤을 주무시고 짐을 싸는 소리에 퍼뜩 놀라 눈을 떠보니 새벽녘이었다. 이미 보따리들이 툇마루에 쌓여 있고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어머니에게 "가지 말라"고 "나도 데리고 가라"고 떼를 썼다.
“알겠다!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에야 나는 외삼촌 손에 이끌려 외가댁 뒤 언덕에 있는 남의 집 뽕나무 밭으로 가서 막 익기 시작한 까만 오디를 따서 바구니에 담으며 한 알씩 입에 넣었다.
아침 햇살이 쨍하니 비추는 키가 아주 큰 미루나무의 흔들거림이 예뻐서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의 미루나무 그 사이를 달려가는 버스가 보였다. 버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저기에 어머니가 타고 있구나...’ 그냥 알았다.
안개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먼지가 한 톨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려가자!”는 외삼촌의 손을 뿌리치고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찔레꽃 필 때면, 회상되는 찔레순의 눈물 같은 맛을 이미 그때 알았다.
가끔, 감정적 이방인이 된 그 작은 아이를 소환하여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럴때면 먹먹해지는 가슴과 붉게 시린 눈시울로 그때 그 아이를 마음속으로 꼬옥 안아본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 가슴이 시렸을 그때의 어머니도 안아준다.
신유균 헤어시크SYK아카데미 원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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