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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이드* 불빛(수필)

              카바이드* 불빛(수필)

                                                      진서우

--- 상략 ---

  아홉 살 무렵, 아버지는 동네 큰길가에서 개조한 리어카에 앨범을 진열해 놓고 팔았다. 그러나 7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누가 얼마나 앨범을 사겠는가. 리어카에 쌓인 앨범은 어린 눈으로 봐도 줄어들지 않았다. 해가 지도록 놀다가 친구네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카바이드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각이 잡히게 진열된 앨범 뒤에서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둥근 어깨가 불빛보다 더 크게 들썩였다. 나는 심장이 두근대는 이유도 모른 채 다른 길로 돌아서 집에 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80년대 초반 포장마차나 노점상들이 전기를 끌어다가 알전구를 켰을 때도 아버지는 카바이드 불을 이용했다. 돌맹이처럼 생긴 회백색의 카바이드 덩어리를 원형의 깡통에 담아 물이 들어있는 다른 깡통에 넣었다 그러면 가늘고 긴 양철 막대기의 구멍으로 가스가 나왔다. 물과 반응시켜 가스를 발생하게 하는 원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꽃은 냄새는 역겨웠지만 센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잘 버텼다. 시간이지나 물에 불어 푸석푸석해지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버지가 신설동에 있는 노벨극장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때였다. 친구와 싸웠는데, 그 친구가 내게서 카바이드 냄새가 난다고 흉을 보고 다녔다. 급기야 다른 친구들까지 나를 ‘카바이드’라고 부르며 따돌렸다, 나는 한동안 외톨이가 되어 의기소침하게 지냈다. 잠을 잘 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기를 바랐다. 그때부터 활달한 겉모습과 달리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했는지 몰랐다.

--- 하략 ---

*물과 반응하여 아세틸렌 가스를 발생시키는 고체 물질. 가스에 불을 붙여 전기 대신 사용했다.

(김포문학 39호 346~347 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진서우  김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원주생명문학상 대상(2020). 김포문학상 우수상(2020).『에세이 문학』초회 추천(2022). 김포문예대학 21, 23기 수료.

 

[시향]

 진서우 작가는 제주에 주거지를 두고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제주 중산간 1100 고지 도로로 접어들자 그을음 같은 안개에 삼나무 숲이 지워지고, 앞차의 후미등도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희미한 그 후미등 불빛을 보는 순간, 아버지의 카바이드 불빛이 오랜 망막에서 깨어났다 마치 아버지의 유품을 발견한 듯 당황스러웠다 생전의 아버지 곁에는 늘 리어카와 카바이드 불빛이 분신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1970년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개조한 리어카 위에 카바이드 불을 켜고 각종 생필품이나 앨범 과일 등을 매지매지 쌓아두고 파는 일은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늦게 귀가할 수밖에 없는 행인들에게는 요긴한 구매처가 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오직 자녀 교육을 위해 잡히는 대로 일했던 부모님의 초상이다 ‘80년대 초반 포장마차나 노점상들이 전기를 끌어다가 알전구를 켰을 때도 아버지는 카바이드 불을 이용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떤 생을 사셨을지, 먹먹하다

글 : 박정인(시인)

 

진서우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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