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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harvest)

                   수확(harvest)

                                                    루이즈 글릭

 

과거의 너희를 떠올리면 너무 슬퍼져-

 

너희 좀 봐, 무턱대고 땅에 매달려

그게 하늘나라 포도밭이라도 되는 양

그 들판들, 네 주변에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네-

 

아, 조그만 것들, 너희들은 어찌나 확고한지:

그건 은총인 동시에 고통이야.

 

죽음에서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이

이 너머의 형벌이라면, 너희는

죽음을 겁낼 필요 없어:

 

이것이 너의 형벌이라고

가르치려고

내 창조물을 내 몇 번 파괴해야 하는지:

 

시간 속에서 또 낙원 속에서

내가 너를 세운 그 한 번의 몸짓으로.

 

(루이즈 글릭 시집 《야생 붓꽃》73 페이지, 2022년 시공사)

[작가소개]

루이즈 엘리자벳 글릭(1943~  )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 인문 훈장. 2003년~2004년 미국 계관시인.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 1993년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츠상과 전미도서상. 《아베르노》,《신실하고 고결한 밤》 등 총 열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에세이와 시론 두 권을 펴냈다.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향]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스 글릭의 시집《야생 붓꽃》(1992)에서 수확(harvest)이란 영시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는 먼저 시의 화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시편들의 시적 목소리(poetic voice)를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식물의 목소리로, 인간의 목소리로, 때로는 신의 목소리로 화자의 목소리를 바꾸고 있다 <수확>이란 시에서 화자는 누구일까? 첫 행에서 ‘과거의 너희를 떠올리면 너무 슬퍼져’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너희 좀 봐, 무턱대고 땅에 매달려/ 그게 하늘나라 포도밭이라도 되는 양/ 그 들판들, 네 주변에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네Ⲻ’ // ‘아, 조그만 것들, 너희들은 어찌나 확고한지:/ 그건 은총인 동시에 고통이야.’라고 말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신은 인간에게 수확물을 주고, 인간은 그 수확물로 연명하지만, 수확은 은총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하다 저 너머 세계에서의 형벌이 두려워서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어’라고 말할 만큼 수확은 형벌이라는 것이다 가을 들판에 지친 부모님의 수고가 퍼뜩 떠오른다

‘이것이 너의 형벌이라고/ 가르치려고/ 내 창조물을 내 몇 번 파괴해야 하는지:’

 

수확이 형벌이라는 걸 가르치기 위해, 신은 ‘내 창조물을 몇 번 파괴해야 하는지’라고 측은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원죄(?)에 대해 오래 고민하게 한다

 

글 : 박정인(시인)

루이즈 글릭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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