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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

                 솔숲

                                 이호석

 

마을 어귀에 논밭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둔덕진 모양새가 꼭 처녀 거시기 같다고

어른들의 뜻 모를 말이 맴돌아 쌓인 곳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었고 아침이면

밤새 빳빳해진 어둠이 녹아 숨어드는 곳

멀리서 봐도 어둑어둑해서 소나무 그림자도 없이

보이지 않는 소리만 살아가는 곳이었다

 

바람 소리 사이로 솔개라도 빙빙 도는 날이면

마을 조무래기들이 삼삼오오 시시덕거리며

책가방을 불알처럼 달랑거리며 사라지곤 했는데

가끔씩 버려진 팬티가 널브러져 있고

짐짓 어른 흉내 내가며 담배 연기 후후 불어댔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키득거리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곳이었다

 

솔밭에는 소문이 더 무성한 곳이었는데

아랫마을 누가 죽었다고도 했지만

과부댁이 자꾸 들락거린다는 말이

무덤보다 부풀어 올라 야반도주했다고

그런 소문들이 돌고 나면

다음날에는 솔밭 모퉁이 대밭에서

바람이 온종일 가시질 않았다고 했다

 

그곳은 습관적으로 안개가 자욱했는데

그런 날에는 절대 숲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도깨비에 홀려 사라졌다거나 월남에서 돌아온

누구네 아빠처럼 미쳐서 돌아온다고 했지만

어른들이 꾸며낸 걸 알아챌 즈음 누군가의

아랫도리에도 솔밭이 무성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련히 보이던

멀리서 물어봐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직도 그 사람이 소문으로만 살고 있는

 

(김포문학 39호 257~258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이호석 김포문인협회 회원. 『문예바다』신인상 수상

 

[시향]

 동네 어귀에는 음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솔수펑이가 있습니다 외지고 음습하고 어둑한 그곳은 소문처럼 끔찍한 사건이 떠돌아서 조무래기들은 함부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터부시되던 곳입니다 바람을 타고 솔개가 공중을 선회하는 날이면 조무래기들이 삼삼오오 시시덕거리며 버려진 팬티가 널브러진 숲으로 들어가, 어른 흉내를 내며 담배 연기를 불어대곤 했는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키득거리기만 했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솔숲은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아랫마을 사람이 숲속에서 죽었다느니, 숲속을 자꾸 들락거리던 과부댁 소문이 무덤보다 부풀어 올라 야반도주했다느니. 그런 날은 솔밭 귀퉁이 댓잎 흔들리는 소리로 숲은 더욱 스산했습니다 습관적인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절대 숲으로 들어갈 수 없게 조치 되었습니다 조무래기들을 위해 마을 어른들이 미리 소문을 만들어 냈다는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아랫도리에 솔밭이 무성하게 자랄 무렵이었습니다

 아련하게 보이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소문으로만 살고 있는, 그 솔숲은 아마도 시인의 의식의 흐름을 형상화한 곳이라 여겨집니다

글 : 박정인(시인)

이호석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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