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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를 위한 변명 -칠게-

                      새떼를 위한 변명

                                                -칠게-

 

                                                                 박정인

 

 한 달에 한 번, 달이 피를 쏟는 밤입니다

 

 두 눈에 별을 켠 게들이 썩은 피를 떠먹는 동안

 게들 속살 녹는 소리가 달빛을 야금야금 헐어냅니다

 보름달은 새벽으로 갈수록 핏기를 잃고

 오늘부터 차츰 홀쭉해질 것입니다

 

 게들에게 그믐은 자욱한 기다림이죠

 달빛을 곁눈질하지 않고도 뻘밭은 포근한 별채가 됩니다

 

 갯벌은 강과 바다가 엎지른 밀실

 

 말랑말랑 자꾸 치대고 싶어지죠

 밀고 다닌 무릎의 시간이 잔주름 자글자글해도

 게들 보행법을 따라할 순 없어요

 

 갯벌이 벅벅 얽어 갈수록

 포식자의 눈알도 그만큼 돌출되죠

 게들은 옆걸음질로 막장을 구부려 퇴로를 뚫어요

 낮 동안은 지하 방송을 통해 불필요한 출입을 삼가합니다

 

 산란의 계절, 밀실은 가만히 두어도 따끈해져요

 이마에 안테나를 곧추 세운 채

 알들 깨어나는 기척에 주파수를 맞춰요

 

 은하수는 밤하늘 갯벌일까요

 캄캄할수록 별들의 수가 늘어납니다

 

 엷게 웃고 있는 구름 뒤편, 무저울 자리*가 반듯해서

 올해도 갯벌엔 다산이 예고되고

 게들 빽빽한 밀도가 천년 갯벌을 지켜낼 것이므로

 

 우리는 새떼를 보러가야 합니다

 

*초여름 남쪽하늘에서 볼 수 있는 전갈자리 꼬리부분의 두 별이 직선상에 놓이면 풍년이 든다고 함

(『시와 산문』 여름호 33페이지, 2020)

 

[작가소개]

박정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이사. 시와 산문 신인문학상 수상, 제 17회 김포문학상 대상 수상. 현) 김포 미래신문 [시향] 게재. 시와 산문 문학회 회원, <달詩> 동인, <시for.net>동인. 시집 『척』,『시차여행』,『꽃을 매장하다』(공저) 외 다수

 

[시작노트]

 음력 15일 밤이면 어김없이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그 밤이 지나면 달은 제 몸에 핏기를 조금씩 쏟아내며 야위어 갑니다 갯벌의 칠게들은 이마에 두 눈을 곧추세우고 뻘 속의 썩은 피를 떠먹으며 몸집을 키워갑니다 깜깜한 밤이면 포식자의 눈을 피해 게들은 더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보름께가 되면 게들의 움직임이 낮처럼 조심스러워지고 게들의 속살이 녹아내립니다 게들에게 캄캄한 그믐밤은 기다림의 밤입니다 맘껏 뻘밭을 쏘다니며 사랑도 나눌 수 있습니다 “갯벌은 강과 바다가 엎질러”져 생겨난 게들의 포근한 별채입니다 출입구를 뚫고 들어가 막장에 이르면, 위급 시에 빠져나갈 퇴로도 만들 줄 알죠 따뜻한 계절은 산란의 계절입니다 산실은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따뜻해져요

 깜깜한 밤이면, 밤하늘 은하수도 게들을 닮아 그 수가 늘어납니다 이렇게 번식한 게들이 많아질수록 갯벌을 찾아오는 철새 떼 또한 하늘을 뒤덮지요 철새 떼의 군무를 즐기다가도 게들의 치열한 서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글 : 박정인(시인)

 

 

 

박정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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