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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뿌리

                                           김근열

 

6 · 25동란 아주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던

그 처절한 상황을 회상하며

전우를 직접 초연硝煙과 묻었다는

반백의 노인 눈시울 따라 찾아온 도솔산 중턱

그 험준한 중턱에

서넛 평 남짓 흙구덩이 파고 더듬으며

며칠째 쭈그리고 앉아

뼈마다가 반쯤 드러난 바닥을 솔질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오랫동안 잠잠하던

마음속 깊은 밑바닥도 출렁이게 하는 희미한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로 누워 있거나 뒤엉켜 드러나는 뼈마디들

곁뿌리 같아 보이는 손가락뼈 마디마디는

그리운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다하지 못한 말없음표 같았습니다

쑥부쟁이 하나 피우지 못했을 마디마디 곁에

놋숟가락 하나 기억의 편린처럼 녹이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붓끝을 타고 눈으로 몰려드는 붉은 꽃잎에

내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되어 갔습니다

반세기 동안

형상도 없이 길을 잃고

어둡고 습한 곳을 헤매고 다녔을 누구의 영혼이었을까

붓질하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총탄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듯 매운바람이 불어댔습니다

서로의 몸 완강히 끌어안은 듯 분리된 뼈 사이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듯 드러난

고요한 턱뼈에는

차마 그 순간은 귀가 먹먹해져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김근열 시집, 열린시학 시인선 97,『콜라병 속에는 개구리가 산다』,

고요아침, 2013)

 

[작가소개]

김근열  충남 공주 출생.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이사역임, 『영남문학』신인상 등단(2012), 시집『콜라병 속에는 개구리가

산다』. g.y.kim@daum.net

 

[시향]

 강원도 양구군 동면 비아리에는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가 있을 뿐 아니라 해마다 “도솔산지구 전투전승행사”가 열리고 있다 1951년 6월, 도솔산에서 이미 견고한 진지를 쌓아 지키고 있던 북한군에 맞서 미 해병대가 싸웠지만 적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해병대 제 1연대가 미 해병대로부터 도솔산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불리한 위치에서도 야간작전을 감행하여 17일 간의 전투 끝에 24개 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2200명이 넘는 적을 섬멸했지만 우리군도 700여명이 희생되었다 해병대가 바다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고지탈환 임무를 수행해 냄으로써 “무적해병”이란 휘호를 받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시인도 해병대 출신이다 한가위를 보내며 풍성한 밥상을 마주하니, “쑥부쟁이 하나 피우지 못했을 마디마디 곁에/ 놋숟가락 하나 기억의 편린처럼 녹이 붉게 피어”있었다는, 유해 발굴에 참여한 시인의 진술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쑥부쟁이 하나 피우지 못했다는 말. 나라를 위해 젊음의 특권을 누려 보지도 못한 채 산화해버린 수많은 청춘들 앞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 : 박정인(시인)

김근열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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