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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의 충절과  우국정신”의 기림목으로 513년김포의 보호수 이야기 2

 

김포에는 오랜 역사와 스토리를 간직한 마을의 노목과 거목 희귀목들이 있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 거목, 희귀목을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호수로 지정고시하며 지정되는 것이 보호수 관령 법령이다. 산림보호법 제 13조 보호수의 지정고시에 따라 보호수 심의위원회를 통하여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다.  

김포에는 총 64주 보호수가 지정되어 있다. 총 9종류로 느티나무 33주 은행나무 13주 향나무 9주, 회화나무 3주 기타 6주로 들메나무 1주, 상술피나무 2주, 음나무 1주,  갈참나무 1주, 물푸레나무 1주 등이 보호수이다. 김포에서 보호수가 최초로 지정된 것은 40년 전인 1982년의 일이다. 1982년 10월 15일 55주가 지정되면서 최초의 김포의 제 1호 보호수로 이름을 올린 거목은 북변동 361-19번지(구 경찰서)의 540년이 된 은행나무이다. 지금은 북변동 개발지구에 540년된 제 1호 보호수 등 주위환경이 점점 열악해져서 1호 보호수의 오랜 견딤이 지속될지 염려가 되고 있다.(편집자주)

우저서원과 느티나무

아름다운 우저서원에 오랜 보호수들이 깊은 여름의 무성한 잎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초가을의 단풍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우저서원의 충절과 역사를 고스란히 바라보고 지켜온 나무로서 수백년동안 서원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충분한 쉼터와 그늘을 주기에 충분했을 품으로 세월을 이어오며 품위를 더하고 있다.

우저서원은 전형적으로 전학후묘 형식을 갖춘 서원으로 경내외 세 그루의 보호수가 우람하고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사방으로 가지가 고르게 퍼져서 잎이 많고 무성해서 넓고 큰 기상을 아름답게 펼쳐 그늘을 선사한다.

김포보호수 3호는 360년, 김포보호수 5호는 220년, 김포보호수 76호는 513년의 수령을 지니고 있으며 조헌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식재가 된 것으로 유구한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세월을 함께해온 가치가 높은 김포의 보호수이다.

보호수가 살아 있는 곳이 "최고의 명당"

보호수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최적인 곳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만큼 환경이 살아있는 신선한 터전이라 명당이라 칭할 만하다.

산의 맥이 이어지던 우저서원에서 바라보면, 앞으로는 아파트숲과 빌딩이 수없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가 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개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보호수가 잎이 푸르게 하늘로 솟구치는 기상이 소중하고, 사람과 문명에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저서원 인근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사람과 보호수 생존에 안타까운 환경이 되어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랜 세월동안 버티어 온 거목들이 개발로 인해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거목은 뿌리가 수십미터를 간다. 그 근간들이 개발로 잘려나간다”고 밝히는 정성현 공원녹지과 과장.

이정호 팀장, 최성은 주무관이 함께 우저서원 거목을 찾아 경건하게 대하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고 진지하다.

“마을의 정자목으로 여름에는 그늘을, 때로는 서당 훈장이 학문을 가르치는 공간, 마을의 수호목으로 넓은 나무 그늘을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마을의 기가 마을입구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고 정자목이 마을의 기운을 내려가지 않게 했다고 한다.” 나무에 관한 해박하고 흥겹게 안내하는 이정호 팀장의 이야기는 구수하고 참으로 감칠맛이 난다. 

은행나무, 팽나무, 느티나무는 3대 정자목으로, 1천년 이상을 살 수 있고, 불상이나 가구들을 만들기도 한다고. 신라시대 때부터 은행나무를 신성시해서 벌채를 금하기도 했다.

“느티나무는 너무 멋진 티가 나는 나무이다.”

유서 깊은 중봉 조헌 선생의 우저서원과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느티나무들이 든든하게 있어 외롭지 않은 시공간일 뿐만 아니라 대대로 충절의 역사를 후세에게 전해주고 이어주며 서원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의병장 조헌의 의로움, 느티나무처럼 푸르러  

중봉 조헌은 김포에서 출생하여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명종 223년에 급제하여 통진현감, 호조, 예조, 공조좌랑, 성균관 전적, 사헌부감찰, 종묘서령 등 관직을 지냈다. 

조헌 선생은 당시 나진포천에서 낚시를 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 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의병 1,700여명을 모아 영규의 승군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기도 하였다. 

이후 왜군을 맞서 금산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였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우저서원은 중봉 조헌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봉 조헌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인조 26년(1648년)에 세워졌고 숙종1년 1675년에 우저사액을 받았다. 헌종 12년에 우저서원으로 선액되었고 순조 34년(1834)에 고쳐지었으며 1973-1976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고종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사당 왼쪽의 비각에는 조헌선생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유허 추모비가 있다. 경내외 세 그루의 보호수를 심은 지 수백년 세월을 지나고 어마어마한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다.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현재 우저서원에는 6그루의 웅대한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5백년이 된 나무는 수술한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다. 500년을 지나며 나무인들 얼마나 아픔과 고난이 많았을까!

느티나무는 늙어서 티가 나는 나무 또는 누런 회나무가 누튀나무 느티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도 시간이 갈수록 더 품이 넓어지고 그늘을 베풀며 더욱 더 덕이 깊어지면 좋겠다. 몇 백년을 잘 자라 우저서원의 느티나무가 1천년이 되는 날 또 누군가 느티나무의 큰 품과 영원한 기상을 마주할지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오른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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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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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현 2022-09-21 13:57:51

    500년을 한결같이 한자리에서 변화 없이 서있고, 그 자태가 넘처 흐르는 오래된 수목 그늘 아래
    인정 넘치는 할머니 향기가 가득한 당산목입니다.. 정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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