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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엘레지-붉은 노을

          민통선 엘레지

                       -붉은 노을

                                                             임송자

 

구수하고 달달하던 노을빵을 기억한다

하늘이 잘 구워진 오늘도 노을이 달다

 

몸이 기역자가 된 할머니 내외는

노을이 피는 길목에 해마다 수수를 심는다

그 깊은 눈매를 닮아 수수알은 붉고 찰질 것이다

쑥쑥 자란 자식 같은 수숫대를 쳐다보려면

접은 몸을 펴야 한다

알알이 영근 수수 모가지를 올려다보려면 더 많이 펴야 한다

그제서야 노을을 본다

깊은 노을과 붉은 노을이 서로 스며드는 순간

마치 선정에 드는 일 같아

지나가던 바람도 손을 모은다

 

저 노을 좀 봐

일생의 잔고 같은 건 따질 일도 아니잖아

한 마음이 청정하면 수천수만 송이의 꽃이 핀다고 했지

덜 가지고도 더 가진 것처럼 살자 하면

노을 진 하늘 만 평이면 족하다 했거늘

사는 동안

저 붉은 노을 바라다볼 가슴 하나 온전했으면 좋겠네

(시 쓰는 사람들 17집 <바람의 모서리를 돌아서면> 91쪽, 사색의 정원,2020)

 

작가소개

임송자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산림문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회원<시쓰는 사람들> 동인. 제1회 산림문학상 수상, 2014년 『시마을』선정 <올해의 좋은 시> 수상, 2010~ 쉐보레 사보 『쉐비라이프』에 매월 시 발표 시집『그날이 어제처럼 지나간 즈음』『풍경을 위로하다』외 3인 시집, 공저 다수

 

[시향]

 민통선 마을이 하나의 누에고치라면, 시인은 그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듯 마을의 내력을 연작으로 자아내고 있다 노부부가 해마다 길목에 심는 수숫대에 붉게 노을이 스민다 몸이 기역자가 된 노부부의 깊은 눈매를 닮아 수수 알은 붉고 찰질 것이다 자식 같은 수수 알이 영글어 가면 꺾인 허리를 더욱 간신히 펴야 수수 모가지를 올려다볼 수 있다 그제서야 노을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노부부라는 깊은 노을과 자연의 붉은 노을이 서로 스며드는 순간, 시인의 예리한 사유의 눈에 그 풍경이 포착된다 마치 선정에 드는 것 같다고 한다 오죽하면, 지나가던 바람도 손을 모은다고 했을까 참선하듯 마음을 닦아 삼매경에 이르는 듯 보였을까

사람이 덜 가지고도 더 가진 것처럼 살자고 마음먹으면, 노을 진 하늘 만 평이면 족하다고 생각할 만큼 시인의 마음은 비워져 있다 민통선 마을에 세 들어 그곳의 고요를 연작시로 낚아내는 시인에겐 “저 붉은 노을 바라다볼 가슴 하나”가 이미 온전하게 들어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글 : 박정인(시인)

임송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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