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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의 어두운 물속 지도처럼

    물고기들의 어두운 물속 지도처럼

                                                 심상숙

 

흰두루미가 갈대숲을 흔든다

푸드득, 물의 뱃속에 흰 날개를 빠뜨린다

두루미가 물 위를 한 바퀴 돌아나갈 때

못가 나무들 차례차례 줄을 선다

 

흰 날개가 뚫고 지나간 허공 속으로

숲이 다시 돌아오고

갈라진 하늘 모아질 때

내 몸은 그 구멍 난 자리 부수며 걸어 나간다

내가 뚫고 지나간,

그 터널을 걸머지고 오는 뒷사람은

못물 위로 날아간 새의 발자국을 지운다

 

못 길 위에 수많은 터널

새들이 뚫고 날아간 무수한 허공의 길

겹치고 겹쳐도 결코 서로 코를 꿰지 않는다

누더기 하늘

자국 없이 푸르다

 

새들 날아간 물결 아래

물고기들의 어두운 물속 지도처럼

천만년을 뚫고 지워온, 저 터널들

다시 잇대고 잇대어

하늘이 물속으로 더 깊어져 간다

 

(심상숙 시집,『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예술가, 2018)

 

[작가소개]

심상숙  충북 충주 출생, 서울시 초등교원 정년퇴임(2010), 현재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이사. <詩쓰는 사람들> <詩 for.net> <시냇물> <계간 시와 소금 작가회> <계간 예술가 창작> 동인으로 활동 중. 목포문학상 신인상 수상(2012), 여성조선 문학상 우수상 수상(2013), 김장생 문학상본상 수상(2013), 계간『시와 소금』신인상 수상(2014), 광남 일보 신춘문예「첫차」 당선(2018). 시집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예술가,2018)

 

[시향]

 갈대숲을 흔들던 흰 두루미가 허공을 뚫으며 날아간다 시인은 두루미가 뚫어놓은 하늘의 구멍을 부수며 걸어 나가고, 시인이 만든 터널을 걸어오는 뒷사람은 두루미의 발자국을 지운다  뚫린 하늘 길은 이내 다시 메워진다

“새들이 뚫고 날아간 무수한 허공의 길/ 겹치고 겹쳐도 결코 서로 코를 꿰지 않는다”라고 시인은 하늘의 품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하늘에 난 길은 저만 길이라고 고집 부리지 않는다 하늘은 새로 내는 길을 언제나 인정한다 더구나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푸르기만 하다 물고기들의 어두운 물속 지도처럼, “천만 년을 뚫고 지워온, 저 터널들/ 다시 잇대고 잇대어/ 하늘이 물속으로 더 깊어져 간다”고도 한다

하늘은 새들과 사람들이 허공에 길을 뚫고 다녀도 이들 무례를 나무라지 않는다  시인은 하늘의 늡늡함을 진심으로 찬미하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늘을 뚫어 놓아도 그 뚫린 터널들이 서로 코가 꿰이지 않는 것은, 성내지 않고 포용하는 하늘의 품 덕분이라 생각한다 하늘은 넓어서 모든 걸 다 품어 주지만 작은 못 또한 넓은 하늘을 깊이 품어준다고 본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우리들로 공감케 한다

글 ; 박정인(시인)

심상숙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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