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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王)의 정원”을 걷다김포의 둘레길 14 조선의 왕릉 - 향기로운 왕의 숲길과 이른 아침 물안개

사계절 환상의 숲, 조성왕릉 숲길

김포 장릉은 왕의 정원이다. 이 울창한 숲은 산책할 때마다, 에너지와 원기가 회복되는 놀라운 곳이다. 매일 이른 아침 6시면 미리 일찍 당도해서 기다리다가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김포 어디서도 누릴 수 없는 도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깊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장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내부의 능과 역사문화관, 산책로, 연지, 재실, 저수지 등이  문하재청 산하에 관리되고 있다. 

북성산의 장릉, < 조선왕조>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는 곳 고즈막히 홀로 걸으면서 당시 조선역사를 고찰하여보는 여유를 느끼시기에 그만인 곳이 없다. 다종 다양한 생명들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어지는 산책로 역시 으뜸이다. 

하루 2-3천명이 찾는다는 이곳은, 한 번 다녀오면 다음날 또 가고 싶고 숲길이 눈에 선하게 떠오를 만큼 조용하고 단정한 기운을 뽐낸다. 발길이 닿는 대로 숲길을 이리 걸어도 저리 걸어도 좋다. 저수지를 포함하여 한 바퀴를 도는데 약 2.3km, 두 번 원을 돌자고 마음먹으면 약 4.6km의 걷기가 가능하다. 추위가 가시고 나면  맨발로 흙길 걷기에 나선 이들의 하얗고 고운 발이 자박자박 자연에 내딛는 걸음이 상쾌하다. 이른 아침 산안개와 하늘의 변화, 비단 같은 푸른 잔디, 청명한 새소리, 작은 연못 큰 호수에서 노니는 원앙새, 청둥오리, 다람쥐, 고라니 등 생명들의 찬양이 어우러지는 시공간을 다녀오면 하루를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천연보고이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을 찾아 김포로

 

김포의 대표적인 조선왕릉인 장릉은 최근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인근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세계유산과 역사문화적 관경의 시야가 가려지는 문제로 인해 한창 포탈사이트에 김포 관련 상위 검색어를 차지하기도 했다. 장릉은 조선 16대 국왕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과, 어머니 인헌왕후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1970년 대한민국 사적 20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2009년 6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인조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던 원종과 인헌왕후는 죽어서 왕에 추존되었으나, 현재까지도 매년 제향을 위해 시위를 모시고 능으로 행차하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제향공간이 능 아래 있으며, 능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명당수가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연못이 재실 옆에 조성되어 있다. 현재 장릉의 재실은 장릉이 옮겨오기 전, 김포 현청으로 쓰였고, 재실 앞의 연못(연지)은 매해 봄이면 진달래가 피어나고 여름부터는 단아하게 핀 연꽃을 날마다 새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역사를 알고 보면 다시 보이는 “김포왕릉”이야기

장릉은 쌍릉, 두 개의 능으로 이루어졌는데 능을 바라보며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역사에 따르면 원종, 즉 정원군은 선조의 5남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이 뛰어나고 우애가 좋아 선조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정원군의 3남인 능창군은 당시 임진왜란때 죽은 신성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었는데, 17세에 총명하고 비범했다고 하여 집권세력이었던 대북파의 경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정원군 집이 있는 새문동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무고로 인해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으로 정원군의 집은 풍비박산이 나게 되고, 정원군은 나머지 아들들마저 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술로 근심을 달래다가 40세의 나이에 화병으로 죽게 된다. 그는 평소에 “나는 해가 뜨면 간밤에 무사하게 지낸 것을 알겠고 날이 저물면 오늘이 다행히 지나간 것을 알겠다. 오직 바라는 것은 일찍  집의 창문 아래에서 죽어 지하의 선왕을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뒤 정원군의 장자인 능양군이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던 해에 정원군은 대원군에 봉해졌고, 이후 추승되어 그의 묘를 원으로 올리고 원호를 홍경원으로 정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김포역사를 찾다 – 김진수 저) 

왕의 어머니 연주부부인 “인헌왕후”

정원군의 부인이었던 인헌왕후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13세에 가례하여 연주군 부인에 봉해졌다가 이후 아들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보위에 오르자 봉작을 연주부부인으로, 별도로 계운궁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이후 경희궁터에 거주하다가 아들이 왕위에 오른지 4년만인 향년 46세에 별세한다. 이때 인조는 자신이 상주가 되려고 하다가 예학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어 인조의 동생 능원군이 상주가 된다. 정원군과 인헌왕후는 처음에는 양주 곡촌리에 묻혔으나, 인조 5년 김포에 옮겨져 흥경원이라는 능의 칭호를 받고, 이후 봉릉되어 장릉으로 승격되게 된다. 

생전에는 자식을 잃고 아들에 의해 사후 왕으로 추존되기까지 원종 부부의 굽이졌던 삶은 이제 수백년이 흘러 능으로 올라가는 단아한 주춧돌들에 아려있다. 아프지 않은 꽃도 없고, 아프지 않았던 인생도 없다. 부부의 삶이 그러하였듯 그저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주어진 인생을 산책처럼 걸어가볼 수 있는 곳, 장릉은 그런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오늘도 자신의 역사를 묵묵하게 써 나가고 있는 이들의 묵직한 어깨와 가슴을 풀어 주고 씻어 주는 걸어볼 만한 길이 될 것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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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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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현 2022-06-30 08:48:42

    북성산의 장릉, < 조선왕조>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는 곳 고즈막히 홀로 걸으면서
    당시 조선역사를 고찰하여보는 여유를 느끼시기에 그 만인 곳이 없읍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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