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여름처럼 왕성한 스무살에 무예(武藝)에 입문하여 마른 땅위에서 놀았습니다. 무예에 입문하였다니 입산수도(入山修道)하는 것으로 거창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건 아닙니다. 그냥 어린시절부터 몸속에서 머물러있던 욕구를 대학에서 무예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던 한 선배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 정도입니다.

일반 도장처럼 시설이 있는 장소도 없이 사람 없는 건물 옥상과 때로는 산(山)자락에서 잡풀을 쌓아놓고 낙법을 치고 나무(木)라도 뛰어넘을 기상과 힘으로 하늘로 뜀박질을 하던 의기만 살아있던 거친 시절이었습니다. 학과 공부가 끝난 오후에 수련을 거듭한 덕분으로 몸은 마르고 가슴은 단단하게 영글어 가기도 하고, 손과 발이 허공에서 풀리는 기쁨을 얻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 하다보니 헛발질과 똑 같은 허튼 길로 인도하는 마음의 유혹이 있더군요. 책을 1년에 백 권 이상씩 몇 년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 단계에서는 제목만 보고서도 저자의 전개 과정을 읽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는 시시한 생각에 대중소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하듯, 몇 년을 수련에 열중하다보니 몸속에 있는 힘이 밖으로 표출하려고 하는 과정을 겪을 때가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마음에서 정제되고 절제되어 원만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상급기운이 아니라 딱딱하고 직선으로 뻗는 하급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것을 사회생활에 견주어 본다면 물질의 많고 적음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남보다 잘났다는 하급 정신의 이치가 손과 발을 사용할수록 늘어나는 기량이 전부인 냥 우쭐대는 개인 문화가 쌓이는 과정과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몇 년 후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군(軍)에 있는 동안 무예인(武藝人) 선배가 세상을 떠나고,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후 의지하고 지냈던 2대 선배마저도 3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괴롭고도 외로운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신을 의지하고 친형제 보다 더 믿었던 두 선배가 30대의 같은 나이에 세상을 일찍 떠 난후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고민을 거듭하면서 30대를 맞았습니다. 두 선배의 요절과 필자까지 먼저 가면 큰일이라고 후배들이 고사까지 지내주기도 했답니다. 산사람과 죽은 사람을 위한 고사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서른을 넘긴 몇 년 후 무예(武藝)를 다시 시작하고자 했지만 두 번에 걸친 허리디스크 재발로 포기하고 허리 보강운동 차원에서 시작한 풍물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그저 생활 속에서 땅위를 남들처럼 걷고 있을 뿐이며 후배 몇 분은 기천문(氣天門)에 입문하여 무예인으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리만족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벌써 30년이 되어가는군요.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몸으로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얻은 것은 내 것이 되지 못하고 입만 살아 부끄럽게 할뿐이라는 것입니다. 대범(大凡)함도 잃어버리고 갈수록 소심(小心)함과 편협함만 쌓여 때로는 작은 것에 흔들려 비틀거리는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정현채  정현채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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