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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의 애절한 전설이 담긴 “옹주물”에 모란꽃 식재 행사“옹주물 유래” 금빛근린공원의 대표적 스토리텔링으로

27일, 공원녹지과(과장 정성현)는 금빛근린공원(장기동 2200번지에 위치)에서 모란꽃 식재 행사를 가졌다.  행정구역상으로 김포 감정동에 속해 있는 옹주물 마을은 옹주의 우물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빛근린공원내의 옹주물에 대한 스토리텔링 및 모란꽃 50주 식재로 이루어진 이날의 행사는 정승수 주무관이 옹주물 스토리텔링 소개 및 정성현 과장의 옹주물 스토리와 조형물 건립의 역사 안내에 이어 모란꽃 식재 순으로 이어졌다.

정성현 녹지과장은 “한 때는 여기가 물이 고여 있던 연못이 있었다.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연못이었는데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내면서 공사 이후로 물이 안 나오게 되었다. 그때 연못에 물이 안나오게 되면서 많은 고민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설계사, 시공사 등과 여러 방향성을 논의하고 그냥 수도를 연못으로 끌고 오자고 하는 등 방법론을 찾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또 장마가 지고, 무너지는 등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옹주물 스토리“를 살려내자 해서 상징물을 조성하게 되었다. 옹주물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옹주물 유래 안내와 함께 세우게 되었다. 조형물의 아래받침원형은 연못을 의미하고, 연못 물방울 형상안에 옹주가 있게 형상화 한 작품이다. 또한 옹주물 연못 조형물 주위로 세 개의 물방울을 형상화하여 의미를 담았다. 당시 주변에 초화류를 많이 식재했는데 토질의 영향으로 나무도 초화류도 잘 살지 못했다. 2022년 5월, 본래 연못이 있던 옹주물과 조형물 주위에 조상들이 사랑했던 꽃으로 알려진 모란꽃 50주를 식재하게 되어 의미가 있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애절한 옹주물의 전설과 스토리를 잘 살려내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모란꽃을 심는다. 내년 봄 모란꽃을 보면서 여기 금빛근린공원을 찾아오시는 시민들이 김포에도 이런 스토리힐링공간이 있구나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은 작은 시작이지만 앞으로도 김포의 이야기가 있는 숲길을 지속해서 조성해 나가겠다. 이곳 옹주물 시공간도 예쁘게 조성해서 금빛근린공원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링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모란꽃은 화려하여 유형과 표면을 갖추고 있는 꽃으로 부귀화(富貴花)라고 하기도 하고 또 꽃 중의 왕이라고 하기도 한다. 모란이 중국에서부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진평왕때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진평왕 때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빛깔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 씨를 석 되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돌아다니면서 모란꽃을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모란꽃은 5월에 홍자색으로 피고 지름 15cm 이상이며 꽃턱이 주머니처럼 되어 씨방을 둘러싸고 있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8개 이상이며 크기와 형태가 같지 않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가장 자리에 불규칙하게 깊이 패어 있는 모양이 있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6개까지 털이 있다. 또한 꿀이 많아 벌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옹주물의 유래

“옹주물의 지명 유래는 조선 14대왕 선조 여섯째 딸 정휘 옹주가 옛날 이용하던 샘물이 나오는 우물터라고 알려져 있는 설이 있다. 공주는 14살 때 유정 양에게 시집을 갔으나 시조부가 탄핵되면서 시모와 함께 새로운 거처를 김포 작은 토담집에 마련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약 8년 정도 이곳에서 기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곳에 옹주가 사용한 우물이 있다고 하여 지명이 옹주 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또한 지금은 장릉이 조성된 경위 또한 옹주의 영향을 받았다. 장릉은 인조 임금의 어머니 인헌왕후와 아버지 원종을 모신 곳으로, 인조가 당초 양주에 조성된 아버지의 묘가 불길하다는 생각에 적지를 물색하던 중 김포의 연고가 있던 옹주내외가 청로에 지금은 장릉이 조성되었다고 한다.“는 고을 유래설이 있다.(향토사학자 조시현선생의 사료조사-정승수 주무관 제공)

전해져 오는 또 하나의 고을 유래는 “옛날 나라에 긴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 시기 임금의 총애를 받던 옹주가 세상을 떠나고 가현산에 장지를 조성하러 지나는 중 상여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감정동 인근에 안장했는데 장례를 치른 상여군들이 목이 말라 물을 찾게 되었고 심한 가뭄에 온 천지가 바싹 말라 마실 물을 찾지 못하였는데 감자기 작은 구멍에서 많은 물이 쏟아져 나와 목을 시원하게 적실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은 옹주의 덕망이 하늘에 닿아 은혜로 내린 물이라 하였고 이러한 연유로 마을 이름이 옹주 우물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옹주물로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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