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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민영욱

 

소를 보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해남 끝 작은 마을에서

소처럼 일만 하다 가신 당신

 

날렵하던 허리는 소의 등처럼 휘고

선비같이 곱던 손톱이

소의 발톱처럼 갈라지고

두꺼워졌던 당신

 

삶의 무게가

검은 먹구름같이 몰려올 때도

소의 선한 눈처럼

삶을 긍정의 눈으로 관조했던 당신

 

개구리 울음소리

환청처럼 들려오는 오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여름날 뙤약볕에서

얼굴에 소금꽃이 피듯

논을 갈고 와 목이 타는 저녁이면

막걸리 한 대접과 시조 한 가락으로

지친 육신을 위무했던 당신

 

눈같이 흰 문풍지도

추워서 벌벌 떨던 겨울밤

쇠죽을 끓이며

빨간 고구마를 달콤하게 구워 주시던 당신

 

언젠가 당신의 야윈 어깨를 보았습니다

 

동네 어귀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같던

당신의 어깨 위로

지나가는 세월을 보았습니다

 

이제

나의 인생에도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해거름녘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당신의 그림자처럼 고요히 들려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김포문학 38호 (2021년) 198~199쪽)

 

[작가소개]

민영욱 『서라벌』문예지 유희종 시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국 계룡시낭송대회 대상 수상, 시집『여기까지 잘 왔다』외 14권의 저서, 숙대, 경희대 출강

 

[시향]

  시인은 소를 볼 때마다 ‘소처럼 일만 하다 가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란 이름은 왜 이토록 우리들로 사무치게 할까요? 민경욱 시인의 이 시는, 2009년 1월에 개봉되어 불과 두 달도 되기 전에 관객 수 이백만 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워낭소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무뚝뚝한 노인과 그가 40 년을 부려온 소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지요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희미하게 울리는 소의 워낭소리는 기막히게 잘 듣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꼴을 뜯기 위해 매일 산엘 오르지요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태산 같은 나뭇짐도 나릅니다

  우리들 아버지의 삶도 대부분 소와 닮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시인은 개구리 울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소의 워낭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저물녘, 아버지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 먹먹해지고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왜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더 보고 싶어지는 걸까요?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글 : 박정인(시인)

민영욱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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