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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의 종부

            종택의 종부

                                                   신혜순

 

죽림리 대수마을 권씨의 종부가 작년 돌아가셨다

그래도 마을 종택은 방문객을 받아 종가집을 구경했다

자그마한 종부사진

조금 큰 키인 우리도 올라가기 벅찬데

오르락내리락 돌계단에 오르내린 시간 윤기가 자르르하다

일 년 지난 부엌 가마솥에

윤이 반질반질하다

방금 종부가 장독대에 간 듯한 착각에

솥을 지금도 쓰나요 물으니

종부님이 부지런하셨습니다 하신다

동지 지난 칼바람 탓도 있지만 집 뒤 댓바람 소리가

종부의 살아 있는 소리처럼 차랑차랑하다

고된 삶이었을까 보람이었을까

아래 사랑채에는 방이 열 칸쯤

무슨 반찬들을 맛깔나게 올렸을지

시간을 익혀낸 그녀,

오는 내내 이제 편안하게 쉬고 계실 그곳에 안부를 묻는다

죽림리 내려오는 길옆 억새 바람 스치는 소리는

차마 종택을 떠나지 못한 종부의 풀 먹인 치맛자락 소리다

어둡고 힘든 터널을 들어가는 나의 길잡이인 듯

일상의 무한 반복이 또 다른 것에 도착하며

작은 것이 더 큰 것이라는 지혜를 배운다

 

詩 시선 3,『꽃을 매장하다』<사색의 정원> 84~85)

 

[작가소개]

신혜순 《문학의 봄》등단김포문인협회 사무차장김포문예대학 제 16~20기 수료,

달시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공저시집으로 『시차여행』『꽃을 매장하다』가 있다

 

[시향]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위치한예천 권씨 초간 종택 별당(醴泉 權氏 草澗 宗宅 別堂)은 조선 중기 문신초간 권문해(1534~1591)의 조부인 권오상이 지은 집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 보물 제 457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시인은 권씨 종택을 구경하다 작년에 작고하신 종부의 사진을 봅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일곱 개 돌계단을 오르내렸을 수고와일 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반질반질한 가마솥을 보며 고단했을 종부의 일상을 떠올립니다 별당인 열 칸 사랑채에 무시로 드나들었을 손님들에겐 어떤 맛깔난 음식으로 대접했을까도 상상해 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길섶 억새 스치는 바람소리에 종부의 풀 먹인 치맛자락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둡고 힘든 터널을 들어가는 나의 길잡이인 듯’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맏며느리로서 자신이 져야할 책무에 대해 깊이 담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권씨 종가 종부의 헌신적 삶에서 ‘작은 것이 더 큰 것이라는 지혜를 배운다’ 라고 고백하기도합니다 

  종부의 책무는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이어서타인의 노고와 희생에 대해 우리가 막연히 감동하는 일과 실제 감내하는 것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종부는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가문을 위해 헌신할 때 다시 세워지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글 박정인(시인)

신혜순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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