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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의 봄

       마네킹의 봄

                                          이규자

 

마음만 봄이다

거리는 온통 검은색 물결

봄바람은 느리게 불어오는데 

앞서가는 백화점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길거리캐스팅에 실패한 봄

몸값이 비싼 마네킹을 캐스팅했다

계절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신상품

마네킹이 유행의 문턱을 넘는다

몸의 온도보다 감각의 온도가 앞선 그녀

이른 계절을 입었다

칙칙하던 눈 단숨에 빨아들인다

시선 집중

쭉 뻗은 다리 사이로 봄이 성큼 다가선다

개나리꽃을 몸에 걸친

바람난 여인

너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이 봄,

그녀가 고가의 봄을 팔고 있다

 

(詩 시선 3,『꽃을 매장하다』<사색의 정원>, 2021. 96~97 

 

[작가 소개]

이규자 《예술 세계》시 부문 신인상 등단, <예술시대작가회>회장 역임,《한국문학신문》

제 1회 수필 대상(2019), <동인시집 『꽃길저 끝에』(2018), 수필집 『네이버 

엄마』(2012), 공저『꽃을 매장하다』(2021)

 

[시향]

  봄은 어떤 안색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까요노란 스카프를 쓰고연둣빛 슬리퍼를 끌며 온다고 해도 될까요복수초 산수유 개나리처럼봄의 문은 아마도 노란색으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 우수 경칩도 지났으니 봄을 맞이하는 백화점들은 조바심이 나겠지요 시인이 본 ‘백화점은 초록으로 가득‘ 하답니다 그곳은 언제나 계절을 앞당기지요 누구는 그걸 바라보며 명랑해지기도 하고 혹자는 더 슬퍼지기도 하겠지만백화점 쇼윈도는 완연한 봄의 거리를 위해 값비싼 마네킹을 고용합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불현듯 발랄해지고 싶어지지요 이 시는생명력도 없고 인위적인 마네킹의 이미지와 개나리꽃을 몸에 걸친 바람난 여인의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써 봄의 이미지를 더 강렬하게 합니다 더구나 마네킹은 체온 따위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감각적인 의상과 포즈로 눈길을 사로잡지만 마네킹을 시기하는 사람은 없지요 보는 순간 단숨에 빨려들게 되지요 쭉 뻗은 다리 사이로 봄을 불러들이며 그녀들은 고가(高價)의 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네킹이 재촉하는 봄으로 인해 우리들 마음만이라도 새뜻해지면 좋겠습니다 

봄은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봄의 여인들은 마네킹을 닮아가고 또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도 함께 설레니까요

글 박정인 (시인)

이규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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