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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에 가닿는 중이니

                                     어느 별에 가닿는 중이니

                                                                                                방윤후

 

얘야, 뒤돌아보지 말고 환한 불빛 따라 쉼 없이 가렴 한때 네가 착지했던 지구는 너무 혹독했구나 양평의 공원묘지 액자 속은 아직도 무

중력이란다 무수히 빗발치는 애도도 너의 눈동자 속에서는 먼 행성의 일, 한 줌 흙도 닿지 못하고 섞이지도 못했던 날들이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거니 기저귀 갈아달라 보채고 울고 떼쓰고 아프면 떼굴떼굴 굴렀을 갓돌 지난 너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구나 정말 아팠을 텐데 눈물 가득 드리운 눈, 울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던 너는 그것이 필생의 대응이었니,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지구의 경계를 지날 수 있게 되었다니, 살다 떠난 십육 개월은 우주가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시간일 거야 이

제 지독한 행성을 지워야 할 때란다 환한 빛으로만 기억을 채우렴 네가 닿을 그 행성에서 바라보는 별들이 우리의 눈빛일 것이니

 

[작가소개]

신라문학대상으로 등단, 김포문인협회 회원, 매일신문 제2회 시니어문학상 우수상(「노란 뼈⌟)수상. 시집 『나는 발굴되고 있다』(천년의 시작)

 

[시향]

ㅈ아기가 죽으면, 예전엔 공동묘지 발치나 너덜 애장터에 묻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돌덩이로 눌러놓곤 했다지요 어려서 죽은 자식의 묘지를 보며 오래 마음 아파하는 것은, 그 부모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했으므로, 애장터는 다시 찾아가서는 안 되는 금지장소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묘지를 서기에는 어려운 형편 탓도 있었겠으나, 슬픔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삶의 방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 바위틈엔 어김없이 원추리 꽃 산도라지 꽃이 서럽게 피어나곤 했지요

그러나 이 시에서는 ‘혹독한 행성’에 착지했던 아기가 십육 개월을 살다가 떠났다고 합니다 ‘혹독한 행성, 십육 개월’ 이란 말에서 2020년 10월 서울 모처에서 일어났던 아동학대 사건이 연상되기도 하네요 “양평의 공원묘지 액자 속은 아직도 무중력이란다 무수히 빗발치는 애도도 너의 눈동자 속에서는 먼 행성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하지만, “한 줌 흙도 닿지 못하고 섞이지도 못했던 날들이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거니” 라고 시인은 못내 아파합니다 아픔에 시달리면서도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던 갓돌 지난 아기는 세 번이나 심정지 되는 지독한 불운 끝에 지구의 경계를 지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시인은 아기에게, “환한 빛으로만 기억을 채우”라고 당부합니다 “네가 닿을 그 행성에서 바라보는 별들이 우리의 눈빛일 것이니” 라고 위로합니다 아기가 이 기도를 다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 박정인(시인)

방윤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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