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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의 알코올 도수는 얼마일까

    햇빛의 알코올 도수는 얼마일까

                                                        정문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구석구석 한 바퀴 돌아

상승하면서 조명을 식힌다

 

의자에 앉으면

양말과 바지의 벌어진 간격만큼

노출된 살갗으로 파고드는 찬 기운이

혈관으로 스며들어 원활하던 흐름은

발목에서 정체되어 얼음으로 변해간다

 

옥상으로 올라가

평상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햇빛과 등을 마주하였다

10분이 지났을까?

햇빛이 까만 옷 속으로 스며들어

불을 지피고 있다

이번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햇빛을 마셨다

근육이 풀리기 시작한다

몇 잔을 마셨을까?

노출된 살갗이 빨개지면서 취한다

소주보다 독한 술이다

오랜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온이 평준화 되었다

 

[작가소개]

김포문인협회 이사 역임김포문학상 대상,『참여문학』신인상동서문학상 맥심상 수상. 

[시향

 외풍이 심한 곳에서 오래 앉아 사무를 보거나 일을 하다보면 양말과 바짓단 사이의 맨살이 차갑다 못해 시릴 때가 있지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 있을 텐데요 이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은 경기침체로 더 썰렁하게 느껴지지요 시인은 발목이 시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옥상으로 올라가 평상에 다리 펴고 앉아등에 햇볕을 쬐고 고개를 뒤로 젖혀 햇빛을 마십니다 “몇 잔을 마셨을까노출된 살갗이 빨개지면서 취한다” 라고 합니다 소주보다 독한 술을 마신 듯했네요 빨갛게시린 발목과 시린 얼굴의 체온이 마침내 평준화가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이보다 통 큰 역설이 또 있을까요한마디 불평도 없이 더 차가운 옥상으로 올라가 체온의 평준화를 이뤄내는 시인의 해학(諧謔)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있다면추위를 다스리는 방법 중에 이한치한(以寒治寒)이 있지요 슬플 때 슬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힘든 상황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우리민족 특유의 해학이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글 박정인(시인)

정문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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