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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대교 무료화, 기분좋게, 아침에 뜨는 해 보면서 출근하고 싶어요"현장시민발언대 -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46~49
김권진 대표(가울종합상사)
왼쪽부터 김영직 대표(SM산업), 오지민 대표(프렌차이즈 엘리팝), 박경옥 원장(경희 어린이집)

 

12월 14일, 하늘에 구름이 작품처럼 펼쳐지는 아침의 일산대교에서 통행료 무료화를 위한 1인 시민 릴레이에 김권진 대표(가울종합상사), 김영직 대표(SM산업), 오지민 대표(프렌차이즈 엘리팝), 박경옥 원장(경희 어린이집)이 릴레이 피켓을 들고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간절히 염원했다. 

김권진 대표(가울종합상사)

"김포 일산대교 이용한지가 제가 개통할 때부터입니다. 개통할 때 직장이 일산 식사동이었는데 그때는 행주대교로 돌아다녔죠. 일산대교 생기고 나서 출근시간이 30분정도 절약이 되더라구요. 그 당시 요금이 1000원이었나? 요금을 올리더니 지금은 1200원까지 됬는데, 무료로 잠깐 했었잖아요. 처음부터 무료화 말이 있었거든요."

"민간에서 했는지 도로공사에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금액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하루에 2400원씩이면 거의 10년을 이용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뚫려서 좋았는데 금액적으로 부담이 되더라구요. 지금도 이용은 하고 있고,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많이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아니면 행주대교나 김포대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시간 낭비고, 돈 낭비고, 기름도 안 나오는 나라에서 기름 버리고 환경오염 시키고 좋을 게 하나도 없죠."

"일산대교 개통이 되고, 직장생활 할 때 100일 동안 자전거 타고 출퇴근한 적이 있어요. 왕복 50킬로미터를. 젊을 때니까 그랬는데 그때는 직장생활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됬고, 건강보다는 비용적인 면에서 아끼자 해서 해 봤는데 너무 더울 때는 못하고 봄하고 가을 정도 해 봤어요. 통행료가 많이 비싸니까 도움이 되긴 되더라구요."

"무료화였을 때 며칠 이용했는데 기분이 좋더라구요. 무료화 됬다가 다시 원상복귀 되고 이게 나라법규를 바꾸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했다가 도로 바꾸는게 이렇게 쉬운 건가? 다른 거 하나 바꾸려면 국회에서 몇 년 동안 계류하고 상정도 안하고 그러는데 시민들 가지고 노는건지. 불만이 많지요."

"일반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이 10%인데, 통행료를 년으로 계산하면 세금이 어마어마한거죠. 도로에다 뿌리는 시간과 돈이 장난이 아닌거죠.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고 하루빨리 다시 무료화 돼서 기분 좋게 아침에 뜨는 해 보면서 출근하고, 저녁에 지는 노을 보면서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게 하루빨리 무료화가 됬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직 대표(SM산업)

"김포시민과 일산시민을 위해서 필요한 행동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됬습니다. 일산대교를 자주 이용하지요. 10년은 이용한 것 같습니다. 부당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게 민자 자본으로 만들어진 다리라, 건설업체에서 먼저 자기네 돈을 투자해서 지은 거라 통행료 받는 거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었는데, 이제는 시민의 공익을 위해서 무료화 되는게 맞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료화가 되어 너무 놀랐죠. 좋았습니다. 일산대교가 무료화 되고도 다녔었지요. 낮에 거래처 방문을 자주 하는데 일산대교를 넘어가야 할 때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서울쪽에서 일을 보고 오다가도 일산대교 통해서 김포로 넘어와야 이동하는 동선이 편하거든요. 그래서 자주 이용을 했었습니다."

"양쪽의 입장이 있겠지만 정치권이나 지자체가 건설회사에서 만족할 수 있고, 일산대교 주체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될 것 같고, 일산대교 징수를 받고 있는 건설업체인지 컨소이엄인지 모르겠지만 그쪽에서도 공익적인 것을 생각해서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산대교를 이용하는 서울 서부권만이 아니라 동부권에서도 강화나 김포쪽으로 강화도 관광지로 올 수 있잖아요. 주말만 되면 굉장히 차가 많이 밀리고 강화나 김포쪽을 찾으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일산 파주 김포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전역 전 시민에게 필요한 무료화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방음벽 제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처음 시작할 때 소음하고 분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꼭 필요한 사업이죠. 환경이나 이런 부분은 계속해서 강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갈 수 밖에 없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지민 대표(프렌차이즈 엘리팝)

"날씨도 춥고 한데 다들 열기가 있어서 빨리 무료화가 될 것 같아요. 차도 많이 막히지만 집이 파주라 많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무료화가 되면 더 많이 이쪽 일산대교쪽으로 왔다 갔다 할 거 같고, 편하게 경제가 더 발전될 것 같아요 김포가."

"한사람이라도 더 소중한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 일산대교를 많이 이용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다리 하나 사이에 유료화가 되는지 불편했었습니다. 일산대교로 왔다갔다 편한 방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편한 생활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김포가 발전하려면 여기가 무료화가 돼서 왕래가 많아야 사람들이 김포를 찾아줄 것 같고, 김포가 빨리 발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우동에 살고 있습니다. 김포에 십수년을 살았는데 사우동에서 장사하고 있고 프렌차이즈 엘리팝을 하고 있어요."

"여기 사람들이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불편하다고. 저번에 한 달 동안 무료화가 됬을 때 굉장히 편해하시면서 좋아하셨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통행료 징수가 그때그때는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한 달, 1년 하니까 굉장히 큰 액수가 되더라구요. 그만큼만 좀 줄여도 기름값이든 많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일산대교 통행료가 많이 들기도 하고, 많이 밀리기도 하고 차가 엄청 많네요."

"김포 사람들 인간미가 좋구요. 점점 발전하는 걸 보고 싶은데 조금 더딘 것 같아요. 이런것들이 하나하나 정착이 되면 많이 넘어 오기도 하고, 쉽게 김포를 접할 수 있어서 발전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김포는 열정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고 그게 좋습니다. 김포의 자랑인 것 같습니다."

"사우동은 지금 많이 죽어있고 침체되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이기는 하지만 작은 거, 무료화 때문에 기쁨도 되면서 얘기꺼리도 되고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 금방 바뀌고 나니까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김포에 이런게 딱 정착이 돼서 많이 사람들이 넘어오고 김포를 활성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박경옥 원장(경희 어린이집)

"매일 무료화, 무료화를 정치인만 얘기하고, 우리 시민들은 사실 과연 될 것인가 의문점도 있었고, 어차피 출퇴근하면서 왔다갔다하는 학부모님들도 많이 계시고 무료화 됬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우리의 기대뿐이었었지 과연 이루어질까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오늘 저한테도 기회가 와서 릴레이를 동참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죠."

"오늘 피켓을 들고 서 있어보니 ‘이루어져야 되겠구나’ ‘기본권을 지켜야 되겠구나’ 하는 의무감과 마음도 들어서네요. 1인 릴레이는 전에 어떤 원장님이 새벽에 갔다오셨다고 하더라구요. 원장님도 동참하셔야지요” 하는데 “제가 만약에 동참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게 아니라 아마 대통령정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랬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이렇게 앞에 서 있는 이런 부분들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존경스러운 부분이었었는데 저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원래 어제 할 예정이었는데 오늘로 미뤄졌어요. 그런 것도 행운인가 봐요. 어제보다 날씨가 덜 춥네요."

"이제는 단체들이 하나둘 나서니까 나도 해야 할 때가 됬나보다하고 동참했듯이 아마도 다른 단체도 이렇게 한번 씩 신경을 쓰면 릴레이가 완성되지 않을까요. 저도 홍보활동 하겠습니다. 추운데 항상 그 시간에 매일 나오신다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작은 일에 속할지라도  결과가 어쨌든간에 저희도 일산대교 무료화를 위한 대표군요. 원하시는 거, 하시는 것 꼭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경희 어린이집 하고 있었다가 북변 재개발지역이어서 20 몇 년 하던 것을 5월부터 쉬기 시작했으니까 몇 개월 정도 쉬고 있는 중입니다. 쉬다보니까 ‘일 했던 게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구나’ 생각이 들고 쉬는 게 쉬는 거 같지가 않고, 마음에 부담감이 되게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린이집인가보다 평생해왔던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년 넘게 했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는게 어린이집 인 것 같아요."

"처음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도 하고, 중간중간에 애기도 낳고, 오기도 하고, 중학교 가고, 초등학교 가고 이렇게 하면서 회장되고 반장되고 하면 찾아도 오고 보람입니다. 그 때의 어린이들이 이제 결혼해서 지금 거의 한 27년 정도 됬으니까, 아이들 낳고 아이들 데리고 오고 그게 많지요."

편집국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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