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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맨발

                                             안석붕

 

직립을 버리고 그림자와 하나가 된

그가 흰 천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두꺼운 각질에 덮인 그의 발바닥은

그가 걸어온 길을 복사한 듯

사방으로 갈라져 있다

 

지난 생의 민낯을 드러낸 발

엄지발가락으로 허공 어딘가를 가늠하며

한 세계의 균형과 굽었던 길에 대해

시린 함성으로 통역하고 있다

 

계절이 멈추고

사랑도 멈추고

그리움도 찾아가지 않는 길

 

자기의 높이를 다 지난 발은

두려움과 설렘의 늪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올 거친 삼베의 품이

고요하다

 

[작가소개]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예대학 18-21기, 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컨텐츠학과 졸업(2020.8), 단편소설<쪽이라는 거>(2019

김포문학 36호 발표)외 김포문학과 김포 글샘에 시, 수필 다수 발표

 

[시향詩香]

 고인의 맨발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인연을 의미할까요? 그림자를 깔고 누워 흰 천 밖으로 발을 내놓은, 누군가의 염습殮襲의 시간이겠습니다 그의 발바닥은 생전에 그가 걸어온 길처럼 두꺼운 각질에 덮이고 사방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시인은 고인의 엄지발가락이 허공을 향한 상태를 보고 ‘한 세계의 균형과 굽었던 길에 대해 시린 함성으로 통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함성이란 말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함성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지르는 소리지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해낼 수 없었던 세상의 불균형과 직진하지 못하고 에돌아 걸어온 굽은 길에 대해, 고인은 비로소 세상을 향해 발가락 끝으로 항변하고 있다고 말 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으며 살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누구라도 자기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고인은 이제 삶의 굴곡에서 비로소 해방되었습니다 마치 힘든 세상과도 같은 거친 삼베 올에 싸여있지만 그는 이제 두려움도 설렘도 없는 고요의 세계에 들었습니다 계절이 멈추고 사랑도 멈추고 그리움도 찾아갈 수 없는 고요의 영토로 말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한 생을 깊이 있게 그려낸 시에 오래 눈길이 머뭅니다  

글 : 박정인(시인)

안석붕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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