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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골목

               먹자골목

                                            이재영

 

플라스틱 간판들이 하나둘

리드미컬하게 불을 켜면,

움츠린 어깨와 초조한 주름살이

야합하며 스며드는 저곳,

 

골목의 두께만큼 오래된 사람들이

눅눅한 술집에서 통증을 삼키는 술잔마다

언제 적 약속과, 익숙하게 잊는 저 골목엔,

연체된 카드가 도끼처럼 꽂혀있다.

옆집 버드나무식당 주인의 퀭한 눈에는

세금 독촉장이 미노타우로스*로 보인다.

 

왁자하게 덜컹이다

불법 체류자처럼 서성대는 새벽,

밤새 중력을 잃은 사람들이

부표처럼 출렁이며 첫차를 탄다.

한 몸인 듯 훌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 크레타 섬의 왕 미노스의 아내가 소와 정교(情交)하여 낳았다. 미노스에 의하여 미궁(迷宮)에 갇혔으며 후에 타세우스에게 살해되었다

 

[작가소개]

현재 (재)김포문화재단이사, (사)한국예총 김포지회 수석부회장, (전)(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회장, 김포시낭송협회 대표이며, 2018년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런 경기도민상 ‘문화예술유공표창’, 2019년 (사)한국예총공로상, 2020년 ‘김포시 문화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시향]

먹자골목 간판에 불이 켜지면 움츠린 어깨와 초조하고 주름진 얼굴들이 야합이라도 하듯 모여듭니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어 약속을 지키든, 못 지키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그 골목엔, 연체된 신용이 도끼처럼 꽂혀 있고, 옆집 버드나무식당 주인의 눈엔 세금 독촉장이 괴물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 골목은 장사가 잘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새벽까지 마시며 삶의 애환을 달래던 중력 잃은 취객들이, 첫차를 타기 위해 한 몸처럼 몰려나가는 풍경 속에 시인은 동참한 적 있었을까요? 식당 주인의 속사정까지 친숙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덜 가졌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 속내를 다 내보일 수 있는 먹자골목 안 식당이 참 정겨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에 묶인 우리는 언제 쯤 마스크 벗고 둘러앉아 늦도록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 밤의 풍경이 그립기만 한 요즈음입니다.

글 : 박정인(시인)

이재영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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