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성어머니, 잔인한 여성노인문제

82세인 친정어머니와 한 집에서 지낸지 꼭 한 달여만에 다시 언니네 집에 모셔다드렸다. 호랑이띠에 그토록 엄했던 어린시절의 무섭도록 성실하게 일하시던 어머니는 찾으려해도 흔적도 없다.

어린아이처럼 신체적으로 병약하며 무기력하기만 한 모습과 의존하는 작은 모습만 남아 있다.
자꾸 조그마해져가는 등과 어깨를 바라보며 닦아드리다보면 자꾸만 내 딸과 나의 두려운 미래가 겹쳐져 보인다.

밖으로 나가야하는 딸에게 "자꾸 어디가니?" 라고 물으시는는 모습이 꼭 엄마 치마끈을 놓칠까봐 조바심하는 어린아이같아 어머니 옆에만 있을 수도 없고 딱하기짝이 없었다. 무엇을 잡수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서너살의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와 같은 표정과 태도이다.

맛있는 음식은 달게 드시지만 입에 싫은 음식은 아이가 하는 밥투정과 다름없는 투정이시다. 밤중에 화장실문을 찾지못하고 안방 문을 잘못 열고 들어와서 서 계시는 바람에 자다가 소스라쳐 놀라 일어나기도 했다.

쳐다보아도 생각만 해도 그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모습은 가슴을 파고 든다. 한 밤을 자고 일어나니 피부가 건조해져 가려워진 몸을 어찌나 긁어댔던지 거의 피멍이 들만큼 상처가 되어 있었다. 계속되는 작은 신음소리를 듣다가 어디가 아프신거냐고 물을라치면 안 아프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의식을 못하시는 모습이다.

어머니 혼자 개스불을 켜는 일도 혼자 계시게 하고 밖에나가다니는 일도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면서 내가 불편함을 계속느끼다보니 말을 못하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나서 어렵고, 모시고 일일이 무슨 자리든지 함께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에 집에 돌아갈때 이봉지 저봉지 사들고 들어가보지만 어머니의 입맛은 짧기만 하셨다.

'한 부모는 열자식을 키워도 열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기 어렵다'는 옛말이 수없이 생각났다. 잘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자식으로서의 열등감도 자꾸 기운을 뺏어가지만 나 스스로'시부모라면 이렇게 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무심한 듯한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보아도 개인의 도덕심과 능력,인내로는 한계를 느끼는 것이 부모를 모시는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 가족도 가족회의를 거쳐 어머니가 살고 싶은 자식과 사시기로 하고 집을 마련하는데 다른 형제들은 경제력을 보탰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나자 모시던 언니가 너무 힘들어 하고 있고 다시 새로 나온 방안으로 한 달여씩 자식들이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점점 더 이 세상과 멀어지시는 어머니,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을 그렇게 행복하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는가 라는 자괴감이 자식들의
힘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집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가까운 가정들에서 노인 자살을 비롯한 여러 갈등을 목격해오고 있다. 현실로 보자해도, 1960년대만 해도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2.9%였으나 2022년에는 전인구의 14.3%가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사회복지제도의 미비로 인해서 심각한 노인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소득감소, 신체적 질병, 사회적 역할 상실, 심리적 소외와 고독은 죽음보다 더 아픈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65세 이상의 노인의 87%가 장기간 치료, 요양을 필요로 하는 만성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으며 노인의 약 35%가 제 3자의 도움 없이는 일상 생활 유지가 곤란한 상태이다. 더구나 여성노인들100명당 남성 노인들은 60.7명으로 더 많은 과다현상이며 연령이 높아갈수록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여성노인의 문제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늘 대화상대가 없는 어머니는 신체적으로 활동이 용이하지 못하면서 혼자 중얼중얼 한풀이 같은 노래를 한나절을 읊으신다. 자식들이 모두 일하러나가면 무방비 상태에서 방임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머니가 성격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에 부적격적인 성격이었다고 몰아부치기에는 어머니는 너무나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심리적으로 여성은 '가족중심'적인 좁은 생활환경에 국한되어왔던 것이기에 노후적응문제,고독감 해소와 같은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 남성보다 더 심각한 고독,우울감을 경험한다.

경제적 빈곤문제뿐만이 아니라 질병시 수발문제등 분명히 노인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간과해버릴 수 없는 시급한 현실이다. 더구나 여성의 빈곤은 남성중심적 자원분배의 결과로 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구조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여성노인이 빈곤에 처하게 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여성에 대한 성차별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문제는 단지 우리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인의 문제이고 나와 의 자라나고 있는 딸과도 맞닿아 있음을 절감한다.

우리는 모두 미래의 여성노인이다.

현재의 여성들이 직면하는 불평등적 요소들의 제거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림없다. 성평등적 교육으로부터 전망좋은 분야로의 진출, 여성취업의 활성화와 고용과 승진 에서의 차별도 철폐되어야 한다.현재 당당히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고 제도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노후대책도 마련될 수 있다.

이것들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실질적 평등의 길이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고단한 인생을 살다 가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하지만 우리의 딸은 그런 고단한 인생을 넘어서 더 삶의 질이 향상된 노년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유인봉 admin@gimponu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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