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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붓꽃                
                                                                    
                                                이명선

매무새 고운 그가
묵향 머금고 지긋이 바람을 본다
 
오래전 그의 가계는
사초를 엮는 사관이었다
 
숱한 침탈의 역사와 핏빛 사화 모두
꿋꿋한 붓끝으로 지켜낸 기개
 
하늬바람 품고 있는 봄의 치마폭
오늘,
석란을 피워내는 총기어린 눈매에
홀연히 넋 잃고 선 그림자
 
기억보다 오래된 독백
 
 
[작가소개]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부설 김포문예대학 문예창작과정 20~21기 수료, [글샘] 등에 작품발표
 
[시향詩香]
선비의 가상이랄까? 기개랄까? 붓꽃의 외출이 칼날처럼 예리함에 그만 멈칫한다. 겨울을 삭히고 봄 냄새가 밴 붓꽃은 그냥 없는 듯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묵향이 아니다. “하늬바람 품고 있는 봄의 치마폭/ 오늘,/ 석란을 피워내는 총기어린 눈매에/ 홀연히 넋 잃고 선 그림자// 기억보다 오래된 독백”, 무엇이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채근하는 채찍 같기도 하고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송곳 같기도 하다. 참담이나 침탈이나 하는 어휘는 강한 의지의 표출,  따라서 석란처럼 모질도록 질긴 생의 끈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이 짚어가는 직관적 사유가 정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눈이 부시다. 글 솜씨의 숙련도가 이미 어느 선에 이른, 그래서 깊은 문체에 자꾸 마음이 간다. 문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칠판을 탁탁 치며 음성을 높여 설명해주시던 당시 교내에서 최고고령자로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신 최*창 선생님이 참 많이 생각난다.
글 : 송병호 (시인/문학평론가)

이명선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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