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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21/02/03

          *** 0,    2021/02/03                                        
                                                     서남숙
 
그가 이끄는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올랐어
깜박이는 양수의 숫자를 지나
달콤한 어둠에 당도했어
그곳에서 잠긴 나를 오래 지켜보았어
숙명이었어
지구별에 온 것도 직립을 해야 하는 것도
핏줄의 괘도를 따라 족적을 내림받아야 하는 것 또한
시간은 빨리도 가빴어
호흡만큼 허물어져 오는 그림자 있어
어느 경계에 맞닿게 되었어
왔던 길 돌아갈 시간을 알게 된 거야
그대 시계가 거꾸로 작동하기 시작했어
발자국 하나 둘 지워가는 중이야
그의 손을 잡아끌고 엘리베이터를 내렸어
전멸하는 음수의 숫자를 지나
환한, 그
어느 날 0,
 
 
[작가프로필]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예대학 문예창작과정 16-19기를 수료했다, [글샘] [김포문학] 등에 작품발표
 
[시향詩香]
금년 첫 절기 입춘이다. 일상에서 적어도 하루 서너 차례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오르고 내리는 엘리베이터, 무심히, 그러나 관심 가득한 시선으로 충간을 셈하는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 찍는 동작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만나는 사람들과 살짝 마주친 목례보다 층 번호를 누르는 시선을 놓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몇 층에 사는 ‘누구’인지, 어느 사무실의 ‘그이’ 정도가 전부인데. 시인은 엘리베이터의 층층의 공간을 통해 삶의 대한 고난도의 실상을 유추한다. 어쩌면 우리는 “0”보다 큰 양수와 “0”보다 작은 음수의 틈바구니를 맴돌다 내 의도와는 달리 갑자기 어느 층에 정착하거나 중도하차 해야 하는 그런 삶일지도 모른다. 역은 많아도 정작 내가 내려야 할 역이 어디인지 모르는 것처럼. 한편 엘리베이터에는 없는 ‘0’이라는 시제가 신선하다. “엘리베이터를 내렸어/ 전멸하는 음수의 숫자를 지나/ 환한, 그/ 어느 날 0.”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유도하고 이끄는 힘을 느낀다. 입춘지절에 이처럼 빛나는 작품, 권위 있는 어느 문학상 수상 작품을 대하듯 설레게도 충만감에 젖는다.
글 : 송병호 (목사/시인)

서남숙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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