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홍시와 유자에 대한 추억
  • 박채순 민생당 경기도당 위원장
  • 승인 2020.12.23 09:16
  • 댓글 0
   
▲ 박채순 민생당 경기도당 위원장

어렸을 때, 큰댁에 사시는 할머니를 찾곤 했다. 슬하에 손주를 여럿 둔 할머니가 다른 손주들이 보지 않을 때 내 손에 빨간 홍시를 쥐여주곤 하셨다.
그때의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의 맛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또한, 자자일촌의 마을에서 10월경에는 조상들의 묘에 제사를 지내는 시제(時祭)가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시제 모시는 곳을 따라다녔다. 시제가 끝나고 나면 볏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떡과 과일 등을 싸 주셨다. 이 음식 때문에 어린 나이에 이산 저산으로 힘겹게 시제에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 음식 중 꾸러미에 고흥에서 생산한 유자를 한 개씩 넣어 주셨다. 다른 음식은 다 먹어치우지만, 특별한 향을 가진 유자는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유자를 방안에 두고 까맣게 변할 때까지 향을 누렸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맘만 먹으면 홍시와 유자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의 홍시와 유자의 그 맛과 향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 들어 겨울이 되니, 어렸을 적의 홍시 맛과 유자 향기가 그립다.
홍시와 유자를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노계 박인로 선생의 조홍시가(早紅柹歌)가 떠 오른다.
​“조홍시가(早紅柹歌)”, 박인로(朴仁老, 1561-1642)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柚子(유자) 아니어도 품엄직 하다 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소반 위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만
품어가도 반가워 하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구나
 
이 시는 홍시와 유자를 가지고 효심을 노래한 시조다.
노계 박인로 선생은 조선 선조 때 사람으로 초반에는 임진왜란에 종군했던 무인(武人)으로 후반에는 독서와 수행을 했던 문인(文人)으로 활동했던 분이다.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시가작가로 불린다.
박인로 선생이 조선 시대에 영의정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워 후세인들에게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으로 잘 알려진, 한음 이덕형에게서 감을 대접받자 돌아가신 어머니와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가 떠올라 이 시조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육적회귤의 고사는 회귤고사(懷橘故事)라고도 하는데,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육적(陸績)이라는 사람에 관한 고사다. 육적은 6세 때 당시 권력자였던 원술(袁術)을 만났다. 원술은 육적에게 귤을 주며 먹으라고 했는데, 육적이 원술이 모르게 귤 세 개를 집어 품 안에 감추었다. 육적이 원술에게 작별인사를 올리는데 품 안에 있던 귤이 떨어져 굴렀다. 원술이 “육랑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欲歸遣母)”라고 대답하였다.
이 고사는 원나라 때 곽거경(郭居敬)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적은 『이십사효(二十四孝)』에 실려 있으며, 여기에서 유래하여 육적회귤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박채순 민생당 경기도당 위원장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채순 민생당 경기도당 위원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