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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46>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전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찰하리 잠을 드러 꿈의나 보려 하니, 바람의 디난 잎과 풀 속에 우는 즘생, 무스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오난다. 천상(天上)의 견우(牽牛) 직녀(織女) 은하수(銀 河水) 막혀서도, 칠월 칠석(七月七夕) 일년 일도(一年一度) 실기(失期)치 아니거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약수(弱水) 가렷관대, 오거나 가거나 소식(消息)조차 끈쳤는고. 난간(欄干)의 비겨 셔서 님 가신 데 바라보니, 초로(草露)는 맺쳐 있고 모운(暮雲)이 디나갈 제 죽림(竹林) 푸른 곳에 새 소리 더욱 설다. 세상의 서룬 사람 수업다 하려리와, 박명(薄命)한 홍안(紅顔)이야 날 같은 이 또 이실가.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함께 감상하기>
 
이 노래는 허초희로 알려진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규원가이다. 규원가의 마지막 단락으로 위 내용을 현대어로 풀어보면,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임을 보려 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서 우는 벌레는 무슨 일이 원수가 되어 잠마저 깨우는고?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을지라도 칠월 칠석 일 년에 한 번씩 때를 어기지 않고 만나는데, 우리 임 가신 후는 무슨 장애물이 가리었기에 오고 가는 소식마저 그쳤는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임 가신 데를 바라보니, 풀 이슬은 맺혀 있고 저녁 구름이 지나갈 때, 대나무 수풀 우거진 푸른 곳에 새소리가 더욱 서럽다. 세상에 설운 사람 많다고 하려니와 운명이 기구한 여자야 나 같은 이가 또 있을까? 아마도 이 임의 탓으로 살듯 말듯 하여라.’라는 내용의 가사이다.
 
제목의 뜻이기도 한데 규원(閨怨)이란 말은 아녀자의 원망이라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집을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고 소식이 끊어진 상태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고민하는 여성, 바로 허초희의 정서가 가슴 아프게 표현되었다. 아마도 봉건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가사이기도 하다. 박명(薄命)한 홍안(紅顔)은 기구한 운명의 화자 자신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이 부분을 보면서 허초희의 삶이 궁금하여 알아 본적인 있다. 허난설헌은 1563년에 당시 동인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허엽의 딸로 태어났다.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해, 불과 여덟 살 때 시를 지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허난설헌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조선의 여느 여인들처럼 어른들이 정해준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남편인 김성립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무척 심했으며, 자식마저 병과 유산으로 모두 잃었다. 게다가 친정 오빠인 허봉이 귀양살이를 하다 죽고, 동생인 허균마저 유배를 떠나는 등 친정집도 불행이 끊이지 않았다. 허난설헌은 이 모든 불행을 견디며 오직 시를 짓는 일로 위안을 삼았다. 그녀의 시에는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여인들의 마음과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인 158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 듯 <몽유광상산>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리고 죽기 전 어느 날 가족들에게 “내가 지은 시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 그래서 나처럼 시를 짓다 불행해지는 여인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녀가 지은 <몽유광상산>은 다음과 같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아롱진 난새와 어울렸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라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예고한 것처럼 결국, 스물일곱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삶은 언제나 고달프다. 필자도 고달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고달플 것이다. 모두 그렇다. 그런데 우린 이런 절망도 없는 절망 속에 살면서 희망을 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희망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나의 의지와 노력이 병행되어야 희망이란 놈이 내 주변에 다가온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희망이 간절하게 필요할 땐 필자는 시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얼마 전 끝없는 한계를 느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리고 결심한 것이 공부였다. 그래서 봄에 대학원 시험을 보고 입학하여 다시 또 공부를 하게 되었다. 벌써 학기가 끝나가는 무렵이다. 봄을 돌아본다. 학교를 다니며 다시 머리가 채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무언가 허전함이 사라지고 바탕에 에너지가 서서히 쌓이는 느낌이다. 바로 희망이 내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운명론자보다는 절망의 상황을 희망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삶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또한 누군가가 희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절망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곧 희망인 것을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실감한다. 희망발전소는 나 자신이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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