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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45>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전 읽기
   
▲ 오강현 시의원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 
世路少知音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함께 감상하기>
 
이 작품은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최치원(崔致遠: 857~?)의 작품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문인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였고,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등을 지어 문명을 떨쳤다. 우리나라 한문학의 시조(始祖)라 일컬어지며 ‘계원필경(桂苑筆耕)’ 등의 문집이 있다. 여기에서 지음(知音)이라 하면 자신을 알아주는 이로 춘추 전국 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주는 친구 종자기(鐘子期)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자신을 잘 알아주는 벗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경(三更)은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셋째의 시각으로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동안을 말하는데 일명 병야(丙夜)라고도 한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는 세상을 등지고 고뇌하는 시인의 처지가 드러나 있으며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네.’라고 한 것은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이 없는 현실에 대한 비감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는 서정적 자아의 고뇌를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차단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등불 앞에 마음은 천리 밖을 달리네.’는 세상을 등졌으나 세상의 일에 초연할 수 없는 자아의 번민이 드러나 있는 구절이다.
 
11월, 깊어가는 가을밤의 비바람 속에서 서정적 자아는 괴롭게 시(詩)를 읊조리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를 짓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는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등불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나 마음은 만리 밖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역사의 현장을 외면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밤중에 비가 온다는 것은 밖이 험난하기만 하니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등불이 켜져 있는 방안만 밝다 하고, 거기에 자신의 세계를 설정해 놓고서 만리의 행적을 마음속으로 더듬을 뿐이다.
 
남한에서 가을과 겨울이 제일 빨리 시작되는 곳, 따뜻한 봄과 여름은 제일 늦게 시작되는 곳, 그곳에 김포다. 지금은 단풍이 한창이다. 아마도 이 단풍도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우수수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심리도 계절과 함께 변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외로움을 타고 사색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을 알아주는 벗, 지음(知音)이 있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씩 품고 산다. 우리 서로에게 벗이 되자.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안아주자. 소통하면서 이 추야우중(秋夜雨中)을 보내자. 그리고 다가오는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자. 그러면 다시 꽃피는 봄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송이송이 벚꽃 피우며 은근슬쩍 우리 곁에 와 있지 않을까.

오강현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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