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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기우는 나이

              가을로 기우는 나이
                                                    이재육
 
버스차창 밖 한 사내, 하천변 갈대사이
소주병과 나란히 앉아 아침을 연다
 
햇살에 눈이 시린 백발 서로 쓰다듬으며
주고받는 술잔
 
한때 종종거렸을, 더 이상 연소되지 않는
시간들만 켜켜이 쌓고 있다
 
꺾일 듯 휘는 고비 눈시울로 달래며
온몸으로 끌어올렸던 물길, 막히고
 
가을로 기운 처지가 먹먹해
나 저 옆에 앉고 싶을 때가 있었다
 
서걱대는 어깻바람에 기댄 저 사내
소주 한잔에 다. 툴툴 털어버리길
 
가을볕에 하얀 머리카락이 눈부시다
 
[작가프로필]
김포문예대학 시창작과정 20기를 수료했다. 제27회 김포시백일장차상 수상 [글샘] 등에 작품발표. 김포문인협회 회원
 
[시향詩香]
우연히 차창 밖 시선이 머문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다. 하지만 그 결을 따라 거슬러가는 인생이라는 소주 한잔의 연민은 ‘허전한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은 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혹은 차창에 얼비친 낯익은 듯 낯선 내 모습에 멈칫 할 때가 있다. 나이를 먹는 것 짐 하나 내려놓는 것, 하다가도 어디, 하고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마지막 기운을 모으는 풍성함의 여유 같은 술잔이지만 마냥 낭만은 아니다. 먹먹해오는 눈시울 “그새 이렇게 됐어?” 결과야 무엇이든 ‘가을로 기우는 나이’는 슳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것이 너무 착해서 “그래 인생이 별거냐”고 애써 긍정한다. 사내는 가을로 가는 어느 길처에서 ‘나’와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꺾일 듯 휘는 고비’들이 삭연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 막차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다. 그야말로 ‘소주 한잔에 다, 탈탈 털어버리고 일어서길’바라는 시인의 바람이 전달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이 좋은 계절, 고추잠자리가 외줄을 탄다. 청량한 햇볕에 소주잔을 넘기는 사내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부시다.
글 : 송병호 (목사/시인)

이재육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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