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겸손의 뜻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현으로 생각했고 싸움에서 패배하는 정도로 여겼다. 또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와 더불어 어른과 조상들에 대한 예의 표시로 배웠다.

이와 같이 유독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최대의 존중과 더불어 최대의 수치로 여겨 함부로 표현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동식물은 사람처럼 이성(理性)적인 차원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고개를 세워야 살 수 있다. 동물 중에서도 왕관처럼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수탉이 더욱 그렇다. 벼슬부터 꼬리까지 기상서린 모습의 장닭이 물을 먹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 땅을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 물 한 모금을 취할 수 있다.

한 모금의 물을 먹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세우는 닭을 보고 있으면 엉뚱하게도 보리와 벼 이야기가 떠오른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유독 많이 들었던 것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 이야기다.

배운 것이 많을수록 고개를 숙여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절제된 언행(言行)을 미덕으로 가르치고, 남을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70년대 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벼 이야기를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다는 정반대의 뜻으로 읽은 것은 그 시대의 사회문화 탓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보리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서 벼와 보리 이야기를 함께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벼가 익으면 익을 수 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의 미덕이 있으면 보리는 익으면 익을 수 록 고개를 숙이지 않는 소신도 있어야 한다는 교육을 같은 비중으로 받았다면 균형 잡힌 생각 주머니가 넓어지는 교육효과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편향된 이치를 가르치는 교육은 포용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결국은 창조적인 능력을 갖게 하는 교육에는 빵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나 삶의 주변에서 자연의 이치와 자연현상에 비유한 교육을 받아왔다. 벼와 보리도 마찬가지고 해와 달과 별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바람소리, 천둥소리와 번개소리 등으로 자연의 소리에 비유한 장구, 북, 징, 꽹과리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향한 가지가 있으면 땅을 향한 뿌리가 있고. 고개를 숙여 땅을 보고 씨앗을 뿌리면 하늘을 보고 기상을 읽는 농부가 있듯이 자연현상에서 땅과 하늘 두 가지 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로 대비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닭이 물을 먹기 위해서 땅을 보고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세울 수 있는 것은 균형 잡힌 두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아집을 소신이라 착각하지 않고,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모든 것을 나이로 재단하려 들지 않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제안 하였을 때는 무시하지 않고, 직책과 권위를 내세워 내가 아니면 아니다 라는 편협의 극치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벼 한쪽의 뜻도 아니고 보리 한쪽의 뜻만도 아니다. 벼와 보리가 함께 필요하다 그래야 균형을 이루어 신념과 판단력이 바로 서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취하기 위한 의도된 겸손과 성찰 없는 아집으로 세워진 소신은 겸손도 아니요 비굴함도 아닌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처신과 독선(獨善)에 불과할 뿐이다.

보리와 벼가 토실한 이삭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실속이 아닌 저 들판의 풍상(風箱) 속에서 성장하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뜻을 실천하는 시민과 리더자들이 많은 사회에 상생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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