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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41>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後)면 애달다 엇디하리.
평생애 고텨 못할 이리 이뿐인가 하노라.  
                 
<함께 감상하기>
이 시조는 송강 정철의 훈민가로 선조 12년 즉 1580년의 글이다. 그 중에서 훈민가의 네 번째 수로 ‘어버이 살아 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일랑 다하여라. 돌아가신 뒷면 아무리 애태우고 뉘우친들 어찌하리. 평생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 섬기는 일뿐인가 하노라.’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이 작품은 정철이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에 백성들을 교유, 계몽하기 위해 지은 16수의 연시조이다. ‘훈민가’는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노래로, 순수한 우리말로 지어서 민중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하게 하였으며, 말을 청유형이나 명령형으로 하여 민중을 설득하는 강한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또한 젊은이와 늙은이와의 대조를 통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하고 있다.
 
이번 추석에 몇 년을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을 뵈고 왔다. 한동안 찾아뵙지 못해서인지 평상시 가슴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10살에 돌아가신 엄마, 반생을 장애를 갖고 홀로 살다 7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부모님 성묘를 3년 만에 하고 왔다.
 
사실 어린 10살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형과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삼일 내내 울기만 했었다. 그런데 내 나이 사십이 넘어 여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도 없이 마냥 슬펐다. 그리고 답답했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땐 어려서 눈물만 흘렸지만, 아버지의 죽음 앞에 어른이 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돌아가시고 하얗게 변한 아버지의 손과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 없이 슬퍼만 하고 있는 나. 삼십년 내내 왜 아버지 당신의 삶 속에서 나를 빼내려고만 했었을까. 왜 당신의 삶 속에서 나를 빼내려고만 했을까.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산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결국 그렇게 10살에 엄마, 삼십 여년이 지나 아버지, 그렇게 두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송강의 노래는 내 노래이다. 어버이 살아 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일랑 다하여라. 돌아가신 뒷면 아무리 애태우고 뉘우친들 어찌하리. 평생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 섬기는 일뿐인가 하노라.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은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성묘를 하고 집으로 오면서 눈물을 흘리며 다짐을 한다. 때는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겠노라고. 조금씩이라도 당신께 하지 못한 사랑을 이웃들에게 나누겠노라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 하늘이 참 맑았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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