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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꽃섬
                                                                                                          박종규
 
방마다 문 앞에 실내화가 가지런하다. 실내화는 글 바다에서 현실의 세계로 빠져나오는 거룻배 노릇을 한다. 복도 문을 조용히 열고 잔디 마당에 발을 디딘다. 쾌청한 하늘 아래 파란 물 주름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 늘 그 자리에서 단 하루도 같은 가슴을 열지 않는 너른 바다! 현실의 방에서 글은 날개를 얻는다.// 해변 길을 따라 삼사 십여 분 굽어 걸으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작은 섬을 걷는다. 좁다란 굽돌이 길에 검은 현무암이 줄줄이 따라오고, 그 너머의 파도는 검은 문턱을 넘지 못해 안달이다. 섬의 남단은 바다로 비껴 내리고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성당 앞에 발길을 멈춰 돌아서니 부챗살 시계(視界)가 하늘과 바다를 수평선으로 가른다.// 한껏 팔을 벌리니 와락 안겨드는 바닷바람에 바다가 가득 실린다. 나를 비워내지도 않은 채 이 바다를 다 품어 안고 싶다. 먼 바다를 향해 선 하얀 성모상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막장의 시대,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인류를 위해 단정한 성모상은 바람 갈퀴가 뺨을 후려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서있다.// 섬은 열흘간 ‘무이파’의 치맛자락에 쓸려 상처투성이로 진저리를 쳤으며, 괴물은 바다 속에 버려진 마라도의 쓰레기를 솎아내어 송두리째 섬 위로 되돌려 놓는다. 조그만 섬은 하늘에서 내리는 온갖 잡살뱅이들로 뒤덮인다. 섬 둘레의 검은 현무암 위에는 하얀 스티로폼 부스러기가 끝도 없이 피어나고, 섬은 비로소 하얗게 꽃잎을 두른 ‘꽃섬’이 된다.// 마라도에서의 유배 생활 한 달째 되는 날, 나는 바다 멀리 유배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모진 풍파를 그대로 받아내던 동화 같은 섬. 삼백 제곱미터 그 작은 섬에 갇혀 있었지만, 천 배는 큰 바다와 함께 있었으며 나는 그곳에서 만 배는 큰 하늘을 보았다. 내가 또 이런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날이 있을까? 생에 마지막 기회였을 그 기간을 난 정녕 살리지 못한 채 자발적인 유배를 마감했다. 해수 관음보살의 따스한 품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섬, 마라도. 상처 위에 핀 하얀 섬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꽃섬으로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작가프로필]
소설가, 장편소설 [주앙마잘] [파란비 1, 2] [해리] [그날], 수필집 [바다칸타타] [꽃섬] 등 여러 작품집이 있다. 경기도문학상, 김포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대상, 원종린 수필문학상, 마포문학상, 사상과문학 문학상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회원, 김포문인협회회원
 
[시향詩香]
언제인가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이나 산문 혹은 수필 등을 정해진 지면에 상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작가와 독자의 혜량을 구한다. ‘꽃섬’, 맨 처음 제목을 접하고 야릇한 호기심에서 차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문득 어느 광고에 “자장면 배달시키신 분”이 바람처럼 스친다. 그곳이 ‘꽃섬’이었다! 태풍 ‘무이파’에 떠밀려온 스티로폼이 모여 청량한 섬 마라도에 하얀 꽃이 핀 것이다. 그 섬에는 3대종교시설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작가에게는 예지적 글감(感)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이나 경험적 생각을 옮기는 일이다. 하지만 말은 당골무당 같아도 글로 쓰라하면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말 뜻 그대로 작가다. 그런 작가의 글을 그저 몇 줄 옮겨놓고 ‘꽃섬’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래서 작품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송구하지만 이렇게라도 엿볼 수 있으니 그나마 행운이다.
글 : 송병호 (목사/시인)

박종규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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