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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37>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
   
▲ 오강현 시의원

한 눈 멀고 한 다리 져는 두터비 셔리 마즈 파리 물고 두엄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白松骨)리 떠 잇거늘 가슴에 금즉하여 풀떡 뛰다가 그 아래 도로 잣바지거고나.
맛쳐로 날낸 젤싀만졍 행혀 둔자(鈍者)런둘 어혈질 번하괘라.                        
 
<함께 감상하기>
 
이 시조는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 서리 맞은 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 산을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다가 그 아래로 자빠졌구나. 그리고 하는 말이 다행히 날랜 나였기 망정이지 행여 둔한 놈이런들 피멍들 뻔 했구나.’라는 내용 사설시조이다. 주제는 양반들의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다.
 
두꺼비, 백송골, 파리 등을 의인화하여 약육강식(弱肉强食)하는 인간 사회를 풍자한 이 노래의 시적 자아는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당시 시대상과 견주어 본다면, 두꺼비는 양반 즉 지방관리, 파리는 힘없고 나약한 평민 계층 즉 민중이며 백송골은 중앙관리, 암행어사라는 도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특권층인 두꺼비가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다가 강한 세력 앞에서 비굴해지는 세태를 익살로 풍자한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우의적, 풍자적이며, 희화적(戱畵的)이라 할 수 있다. ‘맛쳐로 날낸 젤싀만졍 행혀 둔자(鈍者)런둘 어혈질 번하괘라.’는 자신의 신체적 불구, 즉 눈멀고 한 다리 저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두꺼비를 빌어, 우리 인간의 분수 모름을 비판하고 있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역사가 지금까지 태평성대를 유지하던 때가 얼마나 있었을까. 늘 고난의 연속이었다. 특히 2020년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고통스럽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고통에 동참하고 감내하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에 함께 한다. 그런데 기존과는 다르게 이것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인해 국민이 더 고통스러워하고 되레 그 세력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비판하고 있는 형국이다. 즉 힘없는 파리를 괴롭히는 두꺼비가 바뀌었다.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두꺼비,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신(神)을 모독하는 존재가 바뀐 것이다.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왜 국민들이 고통에 동참하고 함께 할까. 이 시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분명 있다. 정치의 시작은 삶의 문제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고, 정치의 끝은 문제의 답을 발바닥에서 가슴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머리로만 하지 않고, 또 발바닥으로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호소하고 공감(共感)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작과 끝은 가슴이다. 머리와 발바닥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현재 상황은 말 그대로 아수라(阿修羅)다. 그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질서 있고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 바탕 속에는 낮은 소리로 말하지만 신뢰할 수 있고, 가식적인 악어의 눈물이 아닌 진정성 있는 눈물로 호소하기에 기꺼이 지금의 고통을 함께하고 인내해 가는 것은 아닐까.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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