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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무쇠솥’이 보였다
   
▲ 유인봉 대표이사

문득, 오일장에서 무쇠솥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무쇠솥을 써보고 있다. 솥을 쓰면서 어디인지 모르게, 막혔던 것 같은 마음이 신기하게 풀린다. 어머니 손맛과 기억이 풍성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고, 맛도 아주 그만이다. 솥의 무게가 다소 무거운지라, 마치 새색시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그것이 싫지가 않다.

두 개나 구입하게 되어서 하나씩 올려놓고 밥도 해보고, 옥수수도 쪄서 먹어보니 엄지 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간다. 내친김에 미역국도 끓이고 청국장도 끓여먹는다. 역시 맛이 다르다. 은근한 맛이 일품이다.

일반 냄비처럼 파르륵 끓지 않고 은근하게 오랜 시간 동안 끓인 국물은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진하고, 조금 더 얼큰한 맛이 있는 것만 같다. 고기를 넣어 끓여도 살결이 헤쳐지지 않고 오래가고, 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여봐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조리할수록 맛이 깊어지는 것에, 식구들이 모두 감탄중이다. 무쇠솥의 묵직한 맛.

어릴 때, 부엌에는 무쇠솥이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큰 솥은 겨울날 물을 따듯하게 데워 어머니의 언 손을 덥혀주었고, 따듯한 물 한 바가지는 학교를 가야하는 형제들의 고양이 세수용이었다. 여러 솥 중, 가운데 솥은 늘 맛있는 콩밥을 지어주시던 어머니가 반질 반질하게 닦아놓아, 검은 무쇠가 언제나 반짝였다.

무쇠솥에서 식구수대로 밥을 퍼내고 나면, 눌어붙은 누룽지를 달챙이 수저로 긁어서 형제들의 입에 한 입 한 입 떼어 먹여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모성의 이미지이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가운데 솥에는 엄마가 돌아와 먹으라고 퍼 놓으셨던 밥이 다 식지 않은 미지근하게라고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부뚜막에 올라앉아 배고프니 그저 먼저 밥이 입으로  갔다.

고추장 하나에 멸치를 찍어 먹어도 시장이 그만인 반찬으로 그토록 근심없이 먹었던 최상의 밥이 아니었나하고 기억한다.
다소 멀어진 가마솥의 쓰임을 통해 천천하고 느린 것 같아도  서로를 충분히 받아들여 익혀가며 그 맛을 유지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너무 빨리 나가는 것도 너무 계산으로만 사는 것도 한계가 명확해진 세상이다.
마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과 같이, 계산하면 다 되던 것들, 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해야 하는 세상이 올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모두 마스크를 쓰라는 행정명령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현대사회는 순간의 관계다. 오랫동안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파악할 수가 없다. 잠깐의 안면만이 남거나, 낯선 이들과 잠시 부분적인 관계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그 사람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익어가고 삭혀가며 알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생기면 풀기도 어렵고 오해는 더 큰 오해와 불신과 장벽으로 이어진다.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관계에 따르는 부작용일 것이다.

진정한 것 혹은 진실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통과하는 사이에 꽃을 맺어 잎이 되고, 그 잎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삭막한 상태에서조차 쓰러지지 않는 것들이다.

있을 때는 주위에 아부하는 사람과, 모여드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그것이 본인의 진정함에서 나오는 힘 인줄 종종 혼돈하는 이들도 많다.

진정한 힘은 겨울처럼 겉보기에 남은 것 없는 상황에서라도 의연한 것이 맞다.
메마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휘발되는 관계에서 얻어지는 계산과 냉소만으로 사람 사이가 이어질 수는 없다.

가마솥의 밥맛처럼 오랜 시간이 걸려 드러나는 진국 같은 인생의 맛을 아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좋겠다. 그럴때 세상은 보다 더 중심을 잡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과하는 사이에 꽃이 되고 잎이 되고 그 잎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조차 결코 쓰러지지 않는 힘을 배울 일이다. 진정한 관계와 힘으로 의연하게 익어가며 만나지는 관계여야 한다.

순간은 영원할 것 같은 사람사이도 너무 익어갈 시간 없어서는 안된다. 얻기만 하려는 계산적이기만 한 만남과 셈법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얻었다 한들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안개 같을 지도 모른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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