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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災難) 앞에서
   
▲ 유인봉 대표이사

예측불허의 시간 앞에서 종일토록 내리는 비를 마주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불안할 일만 수두룩하게 많은 장마비이다.

‘오늘도 하루밤을 무사하게 보낸 것에 대한 감사기도’소리가 유난히 귓가에 남는다.
세상이 흙탕물이 되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뉴스에 올라온 상징적인 사진 한 장에 눈이 간다.

세상에, 장마에 떠내려가다가 지붕위에 올라서 있는 소들의 사진, 그리고 산사를 찾아 무리지어 올라가 있던 소 무리의 사진들. 가축인들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명으로서 죽을지 살지 경계 앞에서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을까!
자연의 경계가 모두 애매해졌다.

햇볕이 반짝 난 날들이 오면 거짓말 같을 일이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도시의 모든 문명이 빛을 잃고 흙탕물에 잠기고, 산은 우르렁 소리를 내고 흘러내리고 있다.

인간들이 폭발적인 에너지의 화신처럼 일구어 냈던 것들이 회오리처럼 빨아들이는 기운에 맥을 못 추는 시간이다.
단발머리 중학교 시절, 고향을 모두 뒤덮었던 붉은 흙탕물의 벌판이 떠오른다.

수십년이 지나 다시 고향 산천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아버지의 고향이름과 나의 고향이 동시에 수해지역이 되었다.
지금 다시 15살로 돌아간 것 같은 시간이다.

산 머리에 올라 붉은 흙뻘이 되어 흐르는 물 아래 있는 논과 밭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부모님과 곁에 서서 온 몸이 비에 젖으면서도 솔방울에 맺힌 빗방울이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또렷이 기억난다.

한 해 농사를 완전하게 잃어버린 수해의 자리에서도 맑은 구슬처럼 흘러내리던 빗방울이 예쁘다는 생각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였었다.

그렇게 자연은 내게 있어 엄중한 존재로 기억된다. 그 가난의 시절을 건너 그런 위험은 영원처럼 사라진줄 알았다.  
다시 그 장면이 수십년이 지나 반복적 현실로 되살아나다니.  
정말 어려울 때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도 안나온다.  

누군가와 온전하게 상황에 대한 인식과 희망의 공유가 어렵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여타의 생명체와 인공지능까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시대이지만 한 무더기의 흙더미와 물의 수위앞에 우리는 너무 무력하다.

한없이 모여드는 장마비의 습격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한 없이 어그러진 삶의 자리들이 보인다. 수습하기에 시간이 노력이 너무나 필요하다.

예측불허의 시간에‘영원성’을 말한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만 같은 시대이다.
오직, 작은 단위, 순간이 생명이며 인생이다.

물론 혼자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위대한 것들을 작은 것에서 찾는 시대가 아닐까!
우리의 재난은 우리 혼자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계획이 소멸되거나 설정되기가 어렵다.
오직 나 혼자 겪는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세상 모두 함께 겪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견디는 것이다.

모두 공통적인 중압감에 눌리고 있지만 잠시만 비가 그쳐도 풀벌레들은 다시 희망차게 소리를 낸다.
비가 오다가도 날이 반짝 드는 것을 어찌 그리 빨리 알아차리는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 곧비가 그치겠다는 것을 안다.

순간 순간, 우울하고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이 떠오를지라도 새로운 존재방식의 길을 찾아나서자. 우리도 예외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중의 하나이다.

원하지 않는 감정들이 솟구치고 두려움이 비바람에 흔들리는 시간 같을지라도 우리가 겪는 이길은 멀잖아 지나갈 것이다.
지금, 그리고 다른 날들이 오고 있을 테니까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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