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고전 속에 답이 있다】<31>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임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미덧드니
날 사랑하던 정(情)을 뉘손대 옴기신고.
처음에 믜시던 거시면 이대도록 셜오랴.                                      
 
<함께 감상하기>
 
송시열의 시조로 ‘임이 나를 생각하시매 나는 전적으로 믿었더니, 나를 사랑하던 정이 누구에게 옮기셨습니까. 처음부터 미워하시던 것이면 이토록 서럽겠는가.’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종장에서는 배신에 대한 서러움도 나타나고 있지만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제로 하는 작품이기에 일반적으로 주제는 충군연주(忠君戀主)의 정으로 볼 수 있다.
 
노론(老論)의 영수(領袖)였던 작자가 믿었던 임금의 사랑이 다른 이에게 옮겨 가니 서러움을 금할 수 없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임금의 배신에 대한 직설적 원망이 신충(信忠)의 향가 ‘원가(怨歌)’와 맥을 같이 한다. 작자 송시열은 노론의 영수로 활약하다가 숙종 15년에 왕세자의 책봉을 반대하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 호는 우암. 주자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을 존중하고 청을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강상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국가·사회 기강을 철저히 확립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고전을 읽다보면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었던 임금을 원망하는 노래가 많이 없다. 대부분 임금님을 칭송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좀 다르다. 임금님이 변해서 작자를 사랑하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므로 인해 화자는 몹시 서운하다. 그런데 이는 작은 사건이 아니다. 결국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 결과까지로 이어진다.
 
지금이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을 중시했던 유교사회에서는 마음의 변화는 죽음까지 선택하는 이유이자 당위였을 것이다. 결국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었던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마음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까. 아니라면 무엇이 이 마음을 대신하고 있을까.  
 
사실 지금도 우리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을 꿈꾸며 산다. 그런데 일방적인 일편단심, 즉 누가 나만을 유일하게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일편단심과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말이다. 이기적 사랑이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상호적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만 시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도 정치인을 사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랑은 진실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은 진정성으로, 진정성은 긍정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사랑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한계가 있다. 함께 가꾸어 가는 사랑만이 오래토록 유지된다. 사랑은 서로 가꾸는 것이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강현 시의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