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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흉내

                                                  당신의 흉내
                                                                                                           안기필 

가난을 업고 살았던 60년대 잠깐의 여름, 대나무소쿠리에 쉰 꽁보리밥을 맹물에 헹궈 몰래 드시던 모습 몰래 본 적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지천인데 밥알 한 톨 남기면 죄로 간다고 습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당신 말대로 고운 하늘빛으로 비추어 이 땅의 순박한 농부의 수고가 절반인 금쌀 한 알 흘리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허기의 세월을 위안삼아 쌀 한 톨을 남기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쪼잔한 마음 허투로 듣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대로 흉내를 냅니다. 밥상머리에서 촉촉히 젖은 당신의 흉내를 되뇌입니다.
 
  충분히 배부른 이 계절에 당신의 흉내가 알맞게 익어갑니다.
 
[작가프로필]
2018년 [창작산맥] 등단, 김포문예대학 시창작과정 수료, [글샘] [김포문학] 등에 작품발표, [시 쓰는 사람들] 동인
 
[시향詩香]
사람은 계절이 바뀌고 모습이 달라져도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무엇을 숙명인양 안고 살아간다. 낙관처럼 각인된 본성이 지닌 성품이다. 그 성품은 평생 동안 “나”를 지배한 것도 모자라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흉내'라고 할까 의도적이진 않아도 눈여겨보면 짐짓 의도적일 때가 있다. 멈칫하고 놀라지만 남에게서 습득한 것들이다. 우리의 삶이 다 모방(흉내)인 셈이다.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베껴 내 것으로 만든다. 시인은 가난을 밥 먹듯 했던 시절의 애잔한 기억을 끄집어내 자녀들에게 가르치려한다. 그 가르침은 근면과 성실이다. '습관'처럼 배어 있다. 한 톨의 낟알조차 귀히 여기는 절약이라는 교훈이 훈훈하다. 넘치도록 풍성한 요즘 세대는 기이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흉내'를 내서라도 가르쳐야 할 덕목이다. 침대는 잠을 자가나 곧 소멸하고 말 꿈(夢)만 꾸는 그런 침상(寢床)만이 아니다. '원대한 비전을 꿈꾸는'(Dreaming of a grand vision) 공상(空床)이기도 하다
글 : 송병호 [목사/시인]

안기필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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