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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답이 있다】<26>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
   
▲ 오강현 시의원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함께 감상하기>   
 
이 작품은 성삼문의 작품으로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가 하니, 봉래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휘휘 늘어진 큰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온누리를 뒤덮을 때 나만 혼자 푸르리라는 내용의 시조이다.
 
수양 대군이 세조가 되었을 때 왕위 찬탈 후에 성삼문이 지은 작품으로 자신은 회유되지 않고 절개를 지키겠노라는 절의를 노래한 시조이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는 나무의 입장에서는 그리 긍정적인 대상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상징하는 백설은 수양 대군이 집권하는 부정적 시대를, ‘독야청청’은 그러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굳은 절개를 상징하여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을 노래하고 있다.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세파에 굽히지 않는 높은 지조, 또는 고고한 존재를 의미한다.
 
시대가 어수선할수록 독야청청하기는 매우 어렵다. 정치를 하면서 추운 겨울에 푸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경험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을 지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새삼 느낀다. 세상을 등지고 속세를 떠나 생활하면 내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 차라리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세에서 함께 부딪히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 탄압을 온전하게 받으면서까지 자신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정치를 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길이다.
 
6이란 숫자를 반대로 바라보면 9로 보인다. 내가 바라보는 숫자가 6인데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은 9로 본다. 서로의 바라보는 위치 즉 관점이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해 주지 않는데 있다. 존중은커녕 무시한다. 하물며 나와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 다르다는 것 때문에 상대를 죽이기까지 한다. 정치를 떠나 가족 구성원 간에도, 어떤 조직에서도 나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아니면 내 방향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와 당위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9와 6은 위치만 달리하면 같기 때문이다. 9로 바라보는 사람을 6으로 바라보게, 또 6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9로 바라보게 최대한 설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위치, 관점이 아니라면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어 죽이거나 모함과 거짓이 횡횡한다면 정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다.  
 
모사(謀事)는 계략을 의미한다. 이런 모사를 꾸미는 정치, 정직하지 못한 정치는 잠시 남을 속일지 몰라도 결국 오래가진 못한다. 그리고 순간의 성공은 할지라도 당당하지 못한 결말이 될 것이다. 백성은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동학에서도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사상이 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은 오래 연명하지 못한다. 곧 그 실체가 드러난다. 분명, 누가 백설이고 누가 푸른 소나무인지는 시민과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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