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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현 시의원과 함께 고시조 읽기<13>
   
▲ 오강현 시의원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
것치 검은들 속조차 거믈소냐.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손 너뿐인가 하노라.        
 
<함께 감상하기>
 
이 작품은 이직(李稷, 1362-1431)의 시조로 까마귀의 겉모습이 검다고 백로야 비웃지 마라. 겉모습이 검다고 그 속까지 검기야 하겠느냐? 아마도 겉모습은 희고 속이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한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고려 유신으로서 조선의 개국 공신이 된 이직이 자신의 처세를 변호한 노래이다. 이 시에서는 구차하게 연명하면서 남을 비방하는 무리를 비유적으로 힐책하고 있으며, 작자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고 있는 노래이다. 까마귀도 그 나름의 자아정체성이 있다는 합리화와 항변을 하고 있다. 우화적 기법을 사용한 것, 까마귀와 백로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왕조 교체기에 창작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초장은 까마귀의 겉모습이 검다고 백로더러 웃지 말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까마귀로 표상된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의리를 저버린 무리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그들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장에서 그 점을 분명하게 언명하였다. 겉만 보고 속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종장에서 그보다는 오히려 몸가짐이 정결한 체하며 고려 왕조에 대한 절의만을 고집하는 사람들, 곧 백로로 표상된 무리야말로 희망 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민중의 삶을 모른 체하는 속 검은 자들이라고 역공하였다. 그리하여 자기들은 비록 권세를 쫓는 까마귀들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속마음은 순결하여 오로지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 시대를 열 충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는 그의 삶에 바탕을 둔 자기 정합성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와는 상반되는 시조도 있다. 즉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노래다. 그러고 보면 서로 입장이 다른 관점, 다른 입장에서 한 사안을 바라보고 있기에 서로 상반된 내용의 시조가 나온 것은 아닌가 한다.
 
그렇다. 코로나19를 바라보는 관점, 이에 대한 대응을 바라보는 관점, 또 우리나라가 놓인 상황을 보는 관점 등등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우려하는 이들 또한 있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같은 생각과 입장을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서로 미세한 부분부터 완전 상반되는 것까지 일치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입장을 달리하여 갈등하는 것은 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예를 들어 우리나라로 보자면 주변 외세 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예외일 것이다. 우리의 분열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침략의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임진왜란을, 또한 해방이후에는 남북분단의 상황이 되지 않았겠는가.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늘 외치고 있다.

오강현 시의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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