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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이 깊었던 까닭은

            지난 겨울이 깊었던 까닭은
                                                       심상숙

냉이뿌리에 콩가루 입혀 된장국을 끓이면 국물은 왜 맑고 구수해지는가
봄은 한소끔, 비닐봉지 속 하얀 뿌리로 왔을까
그녀는 냉이 향처럼 사내와 살았다
그러나 장미 넝쿨 우거진 어느 날
몸속을 지워야 했다
하나의 봄을 담았어도 상처가 뚫고 온 슬픔,
그 날부터 어떤 비닐봉지도 날지 않았다
세상으로 건너오다가 뚫고 나온 하얀 뿌리
무성했으나 점점 메말라
뚝 부러지곤 했던, 그녀의 속내가 질기다
없는 듯 천변의 냉이 꽃은 허공이다
그 하늘을 쓸어 담은 그늘이
부르르 떨릴 때마다 함께 날아오르는 씨앗들
얼어붙은 돌짝 밑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폐비닐을
그녀는 봄철 내내 캐냈다
 
슈퍼에서 냉이 한 봉지를 꼭 쥐고 걸어 나오는 그녀,
길 따라 바람 불어와 골목을 가득 채우고
봄내음이 비닐봉지처럼 부푼다
 
[작가프로필]
계간 [시와소금] [목포문학] 등단,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장생문학상, 여성조선문학상 외 다수. 시집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등이 있다. 한국문협회원, 김포문협이사, [시쓰는사람들] 동인
 
[시향詩香]
고서에 쓰기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품인이라고 했다. 品人,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을 삼을 것인지,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억지지만 자연이나 계절은? 현답을 바라기엔 우문에 가깝다.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난 냉이의 단맛은 사내향일지도 모른다. 그 향은 그녀의 손끝에서 빚어진다. 씀을 다한 폐비닐과 돌짝은 삶을 지탱해준 생의 은신처, 저만치 키 작은 냉이 꽃은 밤하늘에 뿌려놓은 튀밥 같기도 하고 텃밭에 흩뿌린 화학비료 같기도 하다. 한편 ‘지난겨울이 깊었던 까닭은’ 시린 바람에 아파한 벚꽃이 송골송골 유년으로 피는 것처럼 콩가루 버무린 따순 향기가 남다른 때문 아닐까? 봄내음이 부풀도록 풍성한 냉이 한 봉지, 코로나19로 지친 모두에게 영육간 강건을 위한 비타민이면 더 없이 좋겠다.
글 : 송병호 [시인]

심상숙 시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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